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인수

아시아나 살리기 위해 아시아나에서 내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28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자산 규모 12조원, 2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25위 수장(首長)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아시아나의 '신뢰 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과 아시아나항공 측은 내달 말까지 대주주 사재 출연 등 자구 계획과 영구채 발행을 통한 자본 보강 등을 추가로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이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내려와 국내 양대 항공사 오너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부실 회계' 급한 불 껐지만 시장은 냉랭

박삼구 회장의 전격 사퇴는 지난 22일 불거진 회계 논란이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다.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에서 재무제표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지 않았다며 '감사 범위 제한에 따른 한정' 의견을 낸 것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대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주식 거래가 정지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회계법인이 요청한 자료를 몽땅 제출하고 나흘 만인 26일에야 '적정'이란 감사 의견을 받아냈다.



조선비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새 감사보고서에서 정정 이전에 드러나지 않았던 부실이 새로 나왔기 때문이다. 최종 감사보고서에서는 삼일회계법인의 요구로 고치기 전보다 부채가 1400억원(6조9576억→7조979억원) 늘었고, 자본은 200억원(1조1132억→1조932억원) 줄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625%에서 649%로 커졌다. 영업이익은 흑자(282억원)였지만, 기타 비용을 고려하니 당기순손실(1959억원)이 발생했다. 감사보고서를 고치기 전보다 영업이익은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당기순손실은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신용 평가사들은 지난 22일 아시아나항공 신용 등급을 기존 BBB에서 '하향 검토 대상'으로 등록했다. 한 신용 평가사 관계자는 "감사 의견 '적정'이라는 게 회계 원칙에 맞게 감사보고서가 작성됐다는 뜻이지, 재무 구조 자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칫 신용 등급이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떨어지면 1조1000억원에 이르는 자산담보부증권(ABS)에 자동 상환 요구가 들어온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 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룹 전체 매출의 60%가량을 맡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에 충격이 오면 각 계열사로 확산돼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게 된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자구책 제출→영구채 발행→신용 등급 유지'



조선비즈


박 회장은 이날 주요 계열사 사내 게시판에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올리고 '일생을 함께해온 그룹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물러나기로 한 것은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박삼구 회장의 퇴진은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조치라는 점에서 나름 인정을 받았다. 이날 퇴진 발표 이후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급등해 전날보다 2.92% 오른 352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당장 신용 평가사들은 4월 말 올해 기업들의 신용 등급을 재평가한다. 산업은행과 아시아나는 앞으로 주어진 한 달간 투자자들과 신평사들의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조(兆) 단위 빚 독촉을 피해 나갈 수 있다. 산은과 아시아나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자구책 제출→영구채 발행을 통한 자본 보강→신용 등급 유지'이다. 산은이 28일 보도 자료를 통해 "금호 측과 긴밀히 협의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계획을 염두에 둔 것이다.

작년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1년 기한으로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산업은행은 이 계획에 대주주의 사재 출연 등 추가로 보강할 내용을 담아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이어 아시아나가 29일 시도하려다 무산된 영구채(永久債·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이자만 내는 채권, 현재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음) 발행을 진행해 자본을 보강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아시아나 측이 29일 주총에 맞춰 650억원가량의 영구채를 발행하려다 사실상 무산된 상태”라며 “시장의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영구채 발행을 재개해 자금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조만간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다음 달 초 이후에 MOU를 재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아시아나항공 장기차입금은 작년 말 기준 각각 1560억원, 132억원 규모다.

◇일각에선 ‘국면 전환용 사퇴’ 의심도…지켜봐야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 교체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이 나와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한 박 회장이 ‘자진 사퇴’라는 초강수로 국면 전환을 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2009년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동반 퇴진했으나 15개월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29일 주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현 법무법인 인강 대표변호사와 이형석 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사외이사·감사위원 후보로 올릴 예정이다. 같은 날 금호산업 주총에서는 이상열 전 문재인 중앙선대위 국가정책자문단 부단장 등이 사외이사 후보로 오른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과 국책은행의 눈치를 보고 ‘정피아’를 영입하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채성진 기자;이기훈 기자(mong@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