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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내가 받는 신용카드 캐시백, 누구 호주머니에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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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신용카드 수수료 갈등

‘영업비밀’ 마케팅비 공개해보니

포인트·캐시백, 연회비의 10배

법인, 개인보다 혜택 3배 많아

카드 점유율 지키기 ‘치킨게임’

수수료율 낮았던 대형가맹점에

금융당국 “수수료 더 내라” 압박

카드사 출혈경쟁 과도하다는 판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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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이 편하게 쓰는 신용카드의 '무이자 할부'와 포인트 적립은 카드사의 호의가 아니다. 가맹점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원하는 서비스만큼 돈을 낸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카드수수료 원가를 산정하는 3년마다 논란은 되풀이될 전망이다. 결국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



“3분만 투자해 나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주는 신용카드를 추천받아 보세요.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저금리 시대에, 신용카드는 투자 없이도 알찬 수익을 안겨주는 뜻밖의 효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이 이용자가 쓴 카드내역을 바탕으로 ‘카드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홍보한 문구다. 이 업체는 신용카드를 저금리 시대의 알찬 투자처로 소개했다. 과장 광고만은 아니다. 2017년 기준 연회비 1만원 낼 때 10만원 가까이 포인트나 캐시백 등 부가서비스 혜택으로 돌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카드를 제외한 개인고객 카드만 하더라도 통상 연회비의 7~8배는 뽑을 수 있다. 이처럼 안정적으로 수익을 돌려준다고 약속하는 금융상품은 현재 없다.

법인카드, 연회비 30배 혜택

하지만 소비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신용카드의 부가서비스는 소비자가 직접 모든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뿐 공짜는 아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영업비밀’로 치부되던 카드업계의 세부 마케팅비 내역을 공개하고 나섰다. 지난 19일 금융위원회는 “2017년 기준 카드사가 통신사의 대금 결제에 따라 받은 수수료가 3531억원인데,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등 지출한 마케팅비는 이보다 많은 3609억원”이라고 밝혔다. 카드사가 통신사와의 거래에서 수수료 수입으로 마케팅비조차 충당이 안 되는 ‘역마진’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어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감독원 자료를 제출 받아 “법인카드를 쓰는 기업들이 연회비의 30배 수준으로 혜택을 돌려받고 있다”며 “개인회원과 비교했을 때 혜택을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왜 당국은 기업 고유의 활동인 마케팅비를 압박하고 나섰을까.

금융위가 세부 마케팅 내역을 공개한 배경엔 이달 들어 논란이 가시화된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의 수수료 갈등이 있었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카드수수료 개편안에서 기존 연매출 5억원 상한에서 30억원으로 우대가맹점 구간을 확대하면서 이들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낮춰줬다. 대신 적격비용(원가)에 반영되는 마케팅비 상한을 △연매출 30억~100억원 △100억~500억원 △500억원 이상 가맹점을 차등화해, 매출이 많을수록 수수료율이 높아지도록 설계했다. 무이자 할부 등 각종 카드사 마케팅 혜택이 대형마트와 자동차 제조사 등 초대형 가맹점에 쏠려있는데도 이들은 카드사보다 협상력이 우위에 있어 그동안 매출이 적은 가맹점보다 수수료율이 낮았었다. 이른바 ‘수익자 부담 원칙’과 ‘역진성 해소’가 목표였다. 그러나 현실에선 대형가맹점이 “우리도 업황이 나쁘다”면서 버텼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의 경우 카드사들이 애초에 목표했던 수수료율만큼 높이지 못했다. 카드사들이 현대차와 체결한 1.89% 수수료율은 연매출 30억~100억원의 평균 수수료율(1.97%)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통신사에서도 “못 올린다”며 카드사를 압박하자 당국이 마케팅 자료를 공개하며 대형가맹점에 “혜택을 받은만큼 수수료를 더 내라”고 카드사를 지원 사격한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점유율 쟁탈전으로 카드사들의 ‘출혈경쟁’이 과도하다는 당국의 판단도 깔려있다. 2017년 카드사가 회원한테 받은 연회비는 8천억원인데, 쓴 마케팅비는 5조8천억원으로 비용 대비 10배 가까이 돌려줬다. 금융위는 이 가운데 카드 약관에 없는 일회성 마케팅 비용이 약 1조원에 이른다며, 이것만 줄여도 카드수수료 인하분(8천억원)을 충분히 보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인카드를 쓰는 기업고객만 떼어보면, 8개 카드사가 지난해 받은 법인회원 연회비 수익은 148억원인데 제공한 이익은 416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회원은 무려 연회비의 28배를 돌려받는 셈이다. 카드사들은 기업들에 해외연수 및 여행경비, 기금출연금 등을 별도로 지급하기도 했다.

국내 신용카드 시장이 포화에 이르면서 서로 고객을 뺏어오기 위한 카드사간 마케팅 경쟁이 점점 치열해졌다. 지방세나 아파트 관리비처럼 수수료가 없는 대금 결제에도 캐시백이나 포인트를 얹어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카드사간 경쟁은 그야말로 치킨게임인 상황”이라며 “2~3년씩 근무하는 대표(CEO)는 자신이 재직할 때 점유율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더 무리하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카드를 쓰는 것 자체가 소비자에게 편의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각종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어떤 면에서 카드사가 국내 소비자들을 잘못 길들여왔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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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점 수수료로 비용 ‘돌려막기’

카드사가 그렇다고 자신들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마케팅비를 쓰는 건 아니다. 카드사는 연회비로 메우지 못하는 비용을 결국 가맹점 수수료와 카드론, 현금서비스 수익으로 채운다. 수수료 상한선이 더 내려가면서 카드사 입장으로서는 카드론 등에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신용카드는 애초부터 외상과 할부 결제가 특징인만큼 자금 조달 비용 등이 드는 ‘비싼’ 결제 시스템이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들은 포인트와 캐시백 등 혜택에 익숙해져 있어 국내 민간소비의 신용카드 결제 비중은 이미 70%에 이른다. 고비용이 고비용 구조를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당장 마케팅이 줄어들면 소비자도 혜택을 뺏기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가맹점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금융당국은 “소비자가 누리는 각종 부가서비스 혜택이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에 기초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카드이용자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부가서비스 관행 개선을 통해 신용카드 결제시장을 저비용 선순환 구조로 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년간 신용카드 확대 정책 쓰면
‘현금 내면 손해’라는 인식 만연
“저소득층에 비용 떠넘겨” 지적도


일각에서는 “왜 정부가 카드수수료를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개입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전세계에서 사실상 한국에만 남아있는 ‘의무수납제’를 근거로 국회가 3년마다 정부가 적격비용을 산정하도록 규정한 법을 통과시킨 탓이다. 카드 의무수납제란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 결제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규정을 가리킨다.

1998년 당시 이런 조항이 나온 배경엔 ‘세원 투명화’라는 정부의 목표가 있었다. 자영업자 등이 소득 신고를 줄여서 하는 경우가 많아 카드결제를 통해 이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도입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세원 투명화라는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돼 소득공제 폐지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증세 논란과 함께 일몰이 연장됐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이었던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지난 13일 다시 3년 연장되면서, 지금껏 모두 9번 연장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신용카드는 많은 거래를 양성화해 자영업자의 세원 파악에 기여했지만, 현재 자신의 계좌에 잔고가 없어도 쉽게 돈을 미리 앞당겨 쓸 수 있는 빚문화를 만들었다.

가맹점이 의무적으로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카드사들은 쉽게 점유율을 늘려올 수 있었다. 가맹점은 소비자들의 신용카드를 통한 ‘과소비’로 매출 증대 효과도 누렸다. 소비자는 당장 현금이 없어도 소비를 할 수 있었다. 카드사-가맹점-소비자의 ‘윈윈게임’이었다.

그러다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쓰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영업자의 부담도 눈에 띄게 늘자 ‘공생관계’가 깨지기 시작했다. 경기가 어려우면 카드수수료 인하 논의부터 나왔고, 실제로 적격비용 산정을 시작한 2012년엔 연매출 2억원 미만에 대해서 수수료 1.8% 상한을 뒀지만, 거의 매해 인하되면서 지난해 11월 개편으로 연매출 3억원까지는 0.8%, 30억원까지는 1.6%의 상한을 뒀다. 지난해 개편 논의에서 의무수납제 폐지도 검토됐지만 중장기 과제로 넘어간 상태다.

지난 20년간 ‘신용카드를 써야 이득’이라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깊숙이 자리잡았다. 여전법상 ‘가맹점은 신용카드를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가격 차별 금지 조항은 현금과 카드를 차별 없이 가맹점이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현금 납부에 대한 차별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카드 포인트 적립이나 캐시백 등의 혜택으로 오히려 ‘현금 내면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주유든 마트든 무조건 카드를 써야 무이자 할부든 포인트든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2002~2004년 카드 사태 이후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혜택은 소비자간에 차별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한국은행의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를 보면, 저소득층과 고령층일수록 신용카드 결제비중이 떨어지고 현금 결제 비중이 올라간다. 소득 2천만원 미만 구간에서 한달에 평균 20.6건을 결제할 때 그중 신용카드 결제는 2.5건으로 12% 남짓 정도다. 반면 6천만원 이상 구간은 28.4건 중 13.1건이 신용카드 결제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돈 없는 이들이 같은 물건값을 더 비싸게 주고 사는 셈이다. 카드 이용자가 할인받는 가격은 알게 모르게 저소득층인 현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혜택 뺏어간다”는 반발 넘어설까

정부도 점차 카드수수료 문제에 대해 ‘자영업자 도와주기’ 차원을 넘어 ‘저비용 결제의 확산’을 강조하고 있다. 제로페이 등 비용이 적은 간편결제가 도입되는 추세지만 아직 신용카드를 위협할 정도의 편리성이나 혜택은 주어지진 않고 있다. 정부는 간편결제 소득공제를 신용카드(15%)와 비교해 훨씬 높은 수준이 40%로 늘린다는 방침이지만, 관련 세법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수중에 돈이 없어도 한달에 한번씩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신용’ 결제에 길들여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수준의 혜택이 없는 한 결제 문화에 큰 변화가 생기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부가서비스 축소 방침에 대한 “줬던 혜택 뺏어간다”는 소비자의 반발을 어떻게 넘어설지가 관건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카드수수료 논의를 단순히 가맹점 수수료 인하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다양한 지급결제수단의 형평성을 확보하고 소비자가 사회적 비용이 적은 수단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큰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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