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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고 장자연 사건

[현장에서]긴급 호출에 출동 안 한 경찰…급급한 해명에 윤지오 거주지역 노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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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중앙일보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인 동료 배우 윤지오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내 한 일간지 기자의 '故 장자연 성추행 혐의' 관련 강제추행 등 공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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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경찰서장은 3월 31일 오후 0시 15분경 윤지오씨를 찾아가 1시간 넘는 면담을 통해 신변보호 미흡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동작경찰서가 출입 기자단에게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 중 일부다. 이 자료는 그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故)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로 나선 배우 윤지오씨가 ‘안녕하세요. 증인 윤지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바로 다음 날 배포됐다.

윤씨는 청원 글을 통해 “벽 쪽에서 기계음이 지속해서 관찰됐고 환풍구 또한 끈이 날카롭게 끊어져 있었다”며 “신변위협을 느껴 경찰이 준 위치추적장치를 눌렀지만 출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윤씨는 “비상호출 버튼을 누른지 현재 9시간47분 경과했고 출동은커녕 아무런 연락 조차도 없다”며 “경찰 측의 설명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이 청원 글은 27만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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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지오씨가 지난달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안녕하세요. 증인 윤지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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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글이 올라간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오전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곧 자료를 만들어 배포할 것”이라며 “자세한 사항은 경찰청 담당자와 이야기하라”며 답변을 피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청원 글이 올라오고 언론보도가 나오고 나서 사건을 인지했다”며 “윤씨에게는 스마트워치를 교체해주고 그 자리에서 눌러 순찰차가 바로 출동하는 것을 보고 이상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예고했던 대로 동작경찰서는 일요일이던 지난달 31일 오후 출입 기자단에게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지난달 14일부터 윤씨에게 임시숙소를 제공하고 신변보호를 실시해 오고 있는데, 지난달 30일 오전 5시 55분쯤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출동하지 못했던 업무 소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동작경찰서장이 새벽에 직접 윤씨를 찾아갔다는 내용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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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달 14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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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찰은 윤씨의 거주지역을 노출하기도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동작경찰서에서 전문경찰관이 윤씨 신변보호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신변보호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려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쇄도한 바로 다음 날 일어난 일이다. "관할 경찰서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밝혀도 될 것을 민 청장은 동작경찰서라는 것을 특정한 것이다.

원경환 서울경찰청장도 1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윤지오 신변경호를 소홀히 한 책임에 대해서 서울청장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신변보호 특별팀’이 경호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관들이 24시간 밀착 경호하는 신변보호 특별팀은 가장 높은 수준의 경호 조치다. 특별팀은 경찰서 과장급인 경정이 팀장을 맡고, 4명의 경찰관이 교대로 근무한다. 원 청장은 “신변경호는 여경 5명이 밀착 보호한다”며 신변보호팀이 모두 여경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강조했다. 신변보호에 대한 다른 조치들보다 여경을 강조하는 부분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이처럼 관할 서장, 서울청장, 경찰청장이 모두 나섰지만 누구 하나 윤씨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느끼게 하지 않았다.

증인 보호 역사가 40년이 넘는 미국은 거주 이전 및 신원 세탁, 생계비, 고용지원까지 지원해 철저하게 증인을 보호한다. 독일도 임시 위장 신원까지 제공한다. 해외 선진국만큼 철저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경찰은 면피용 해명과 사과가 아닌 진정으로 증인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경찰청 관계자는 위 기사가 보도된 뒤 “지난달 31일 새벽 동작경찰서장과의 면담 후 윤씨의 요청에 따라 동작경찰서 관할구역이 아닌 새로운 거주지로 옮겼다”며 “지난달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행정안전위 회의에서 동작서를 언급한 것은 맞지만 이후 상황에서는 노출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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