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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SK·현대·남양까지… 재벌 3세들은 왜 '마약'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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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창업주 외손녀 ‘봐주기 수사’ 논란
한국일보

마약 구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SK그룹 오너가 3세 최모(31)씨가 1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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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과 현대그룹에 이어 남양유업까지 창업주의 3세들이 잇따라 마약 혐의로 입건되거나 조사를 받으면서 재벌가 및 부유층 자제들의 모럴 해저드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해외에서 유학하는 동안 대마초 등 마약을 접한 것으로 드러나 한국 사회의 규범과 괴리된 환경이 부유층의 마약 범죄를 부추긴다는 등의 분석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벗어난 일탈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천경찰청 마약수사대는 SK그룹 오너가 3세 최모(31)씨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일 밝혔다. 최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18차례에 걸쳐 서울 강남 등에서 마약 공급책인 이모(27)씨에게 구입한 전자담배용 액상 대마와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가 경찰 조사에서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회장의 손자인 정모(29)씨와도 함께 대마초를 피웠다고 진술함에 따라, 정씨도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최씨와 정씨 등은 모두 해외 유학파인 것으로 드러나 상대적으로 마약에 접근하기 쉬운 부유층 자제들의 환경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약을 공급한 이씨 또한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최씨 및 정씨와 알고 지낸 사이였다. 특히 정씨의 여동생(28)은 2013년 4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정씨와 함께 입건된 3명 모두 해외유학생이었다. 대만에서 대마를 들여오고 액상 대마를 흡연한 혐의로 지난해 9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허모 SPC그룹 전 부사장도 학창시절 유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범죄 전담 경찰관은 “해외 유학을 통해 마약류를 접할 기회가 많은 데다 조기 유학을 떠나 한국 사회의 규범을 배울 기회를 놓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재벌가 자제들의 마약 사건/ 강준구 기자/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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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란 부유층 자제들이 쾌락의 마지막 단계로 마약에 탐닉한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 일부에서는 마약류를 비범죄화하는 곳도 있는 만큼 마약을 접하기 쉽다”며 “마약류가 주는 강한 자극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한 이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중독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벌 3세대로 내려갈수록 1세대나 2세대의 기업가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마약 범죄 등 일탈행위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한다.

물론 마약류 범죄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 현상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7 마약류범죄백서에 따르면 전체 마약류 사범 중 무직(28.8%)이 가장 많았으며 노동(3.8%), 회사원(3.7%), 농업(3.5%), 공업(1.7%)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 버닝썬 스캔들 수사를 통해 ‘물뽕(GHB)’이라는 마약류가 강남 클럽 일대에서 폭넓게 번진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경우라도 마약 흡입과 복용은 범죄인 만큼 엄격한 법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근 남양그룹 창업주 외손녀 황모(31)씨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수저 봐주기’ 논란마저 확산되고 있다. 황씨는 2015년 11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피고인의 판결문에 황씨가 마약 범죄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적혀있다고 전해지면서 ‘봐주기 의혹’이 불거졌다. 이날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당시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내사에 착수해 진상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도 지난해 10월 황씨 마약 투약 의혹 관련 첩보를 입수해 수사 중이다.

봐주기 수사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재벌가를 비롯한 부유층 자제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적용해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마약류 중독에 재벌과 서민의 차별이 없긴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그만큼 가중치를 둬서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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