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개편을 놓고 재정이라는 곳간을 지키는 마지막 문지기인 예타 기능을 정부가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라는 비판이 전문가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거세다. 특히 내년 총선용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지역 숙원사업이라도 경제성이 낮으면 정부가 예타를 앞세워 거부했는데, 앞으로는 이 같은 정치권 입김을 막아낼 수 있었던 기준들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비수도권 사업의 지역균형발전 평가지표를 상향 조정한 것은 사실상 자의적인 평가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책성이나 지역균형발전 같은 비정량적 지표 비중을 높이고, 경제성이라는 정량적 비중을 줄였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도 이날 "비용·편익 분석 비중을 지나치게 낮춰 경제적 타당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업이 정책 평가라는 이름의 정무적 판단으로 사업 추진이 결정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기관이 수행해온 종합평가를 앞으로는 기획재정부 산하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수행하는데, 예타 심사 결과를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선정하는, (내용을)모르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되는 구조에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예타의 실질적인 취지가 상실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 사업은 사실상 빗장이 풀린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개편 방안에 따르면 복지·소득이전 사업에 대한 평가방식이 기존 '시행 또는 미시행'에서 '수혜계층·전달체계 개선 등 적극적 대안 제시'로 변경된다. 즉 경제성 분석에서 미흡한 평가를 받으면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라 심사기관과 기재부가 제시한 대안을 사업주체(지자체나 주무 부처)가 보완하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예타 기준 완화로 청년수당 같은 표퓰리즘 복지폭탄을 제어할 장치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동수당과 일자리안정자금은 예타 없이 추진됐는데, 앞으로 예타를 진행해도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사업 방식 컨설팅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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