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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정부가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살펴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바로 예타 조사기관에 조세재정연구원을 추가한 것이다. 예타 심사에 평균 19개월이 소요되니 조사기관을 늘려 기간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경제학계에서는 국책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깐깐하게 따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정부가 고안해낸 묘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 등 이른바 진보정권 때는 어김없이 예타 심사에서 KDI의 힘을 빼는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편 방안에 따르면 연구개발(R&D) 사업이 아닌 분야의 예타는 그동안 KDI가 단독으로 수행해 왔지만 내년부터 조세연도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 정부는 "최근 사회간접자본(SOC) 외에 복지·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타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새로운 분석 틀을 적용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타 수요가 늘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분석 틀에 대한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예타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라면 현재 예타를 전담하는 KDI 재정투자평가실(35명) 인원을 확충하거나 조직을 키우면 되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KDI는 정치적 압력이 있어도 잘 버티는 편이었다"며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책 프로젝트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예타 심사 기관을 하나 더 늘린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KDI가 무력화되면 재정 낭비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KDI가 현 정부에 눈엣가시가 된 이유는 지방균형발전을 중시하는 정부의 국정 철학과 KDI의 경제 중심 철학이 충돌해서다. 정부로선 지방균형발전을 실현하려면 경제성은 어느 정도 희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KDI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들어 제동을 걸곤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현 정부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모태가 되는 참여정부 때부터 일관된 흐름이었다.
예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김대중정부 당시 무분별한 토건 사업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런데 참여정부 들어 경제성 외에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대폭 확대하는 식으로 제도 변화가 이뤄졌다. 특히 종합평가라 불리는 AHP를 도입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1999년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경제성 분석(B/C, 비용 대비 편익)만 있었지만 참여정부가 2003년 AHP를 전격 도입했다.
경제성 분석은 비용과 편익을 추산해 뭐가 더 큰지를 따지는 정량적 평가인데 참여정부는 편익보다 비용이 커도 '정성적 평가'를 통해 예타를 추진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다. AHP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 세 가지를 종합해 점수를 낸다. B/C 값이 1보다 작아도 AHP가 0.5 이상이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문재인정부에서 추진한 이번 제도 개편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개편안에 따르면 비수도권은 경제성 가중치가 기존 35~50%에서 30~45%로 5%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비중이 55~70%로 높아진 정책성·지역균형발전 평가는 정성적 평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량적 부분이 40%가량밖에 안 되고,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이 말이 좋아 2개이지 사실 같은 것"이라며 "이것을 객관적 근거에 의해 판단한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 형식만 예타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HP를 수행하는 조직도 정부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기존 AHP는 종합평가 위원 10명 중 7명이 KDI 연구진이었는데 5월부터는 기재부 내에 설치할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산하 분과위원회에서 맡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1차로 KDI가 B/C 분석을 하면 2차로 AHP를 하는데, B/C와 AHP의 차별성이 없어 제도 개편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분과위 위원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민간위원 2인, 조사기관 프로젝트매니저(PM) 1인, 외부 전문가(위촉위원) 7인으로 구성된다. 외부 전문가는 정부가 선임한다.
특히 AHP는 숫자로 평가되는 B/C만큼 객관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의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예타 심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AHP에는 객관적 평가 지표가 없다 보니 결과적으로 B/C와 AHP가 연동된다"며 "분과위 위원은 사실상 정부가 선임하는데, 정부 입맛에 맞는 위원을 선임해 정성적 평가를 하면 사실상 예타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꼬집었다.
또 예타 심사가 경쟁체제가 되면서 심사기관의 독립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예타 관련 예산을 가지고 심사기관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예타는 깐깐하게 걸러줘야 하는데 부처의 이익을 위해 예타를 하는 유인구조가 돼버린다"며 "임의 할당이 아니라면 이런 유인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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