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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반려동물은 대피소 출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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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에 동물들도 큰 피해

맹인 안내견 외 출입 금지

“가이드라인 조속 마련을”



경향신문

“엄마, 빨리 집에 가요 멍멍” 강원 동해안을 덮친 대형산불 발생 닷새째인 지난 8일 오후 고성군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피해주민 한모씨가 반려견 길순이를 등에 업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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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대피소에 반려동물 출입 가능한 곳 있나요? 강아지를 차에 태워 대피소 3곳에 가봤는데 출입 불가라서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속초 시내로 번진 지난 5일 새벽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반려동물이 들어갈 수 있는 대피소를 묻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재난 대피소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등 ‘봉사용 동물’을 제외하고 동물 출입이 금지된다. 주택가까지 덮친 화마에 목줄에 매인 채로 불에 타죽거나 화상을 입은 반려동물들이 속출하면서 재난 발생 시 동물 대피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9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강원 산불로 폐사한 가축 등 동물은 4만2048마리다. 이 중 닭, 오리 등 가금류 피해가 4만여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부는 폐사한 기타 동물 155마리 중에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 일부가 포함됐을 것으로 본다. 소나 닭처럼 재산으로 등록되지 않은 반려동물의 정확한 피해 실태는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무사히 집 밖으로 탈출해도 동반 피난은 쉽지 않다. 행안부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애완동물 소유자들은 가족 재난계획에 애완동물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안내하면서도 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고 공지한다.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친구·친척에게 맡기거나 동물병원 등에 동물을 위한 대피소가 마련됐는지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포항 지진 이후 반려동물 재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를 마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잇따랐지만,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대피 요령은 마련되지 않았다.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이듬해인 2006년 ‘반려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30개 이상의 주에서 동물을 포함한 대피 계획이 마련됐다. 동물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도 대폭 늘어났다. 동물 동반이 불가능한 경우엔 동물보호담당관이 가까운 다른 보호소나 동물전용 대피소로 동물을 인계해 추후 보호자와 함께 복귀할 수 있도록 한다. 일본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뒤 환경성이 2013년 ‘재해 시 반려동물 구호대책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이번 강원 산불 현장에서 동물구조활동을 벌인 반려동물재난위기관리사 채미효씨는 “우리나라는 재난 시 반려동물 대피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수립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사전에 반려인들이 재난 대비 준비를 잘한다면 동물 안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채씨는 “국가 차원의 반려동물 대피소 마련이 어렵다면, 동물단체 등과 민관 협력을 통해 동물병원과 같은 특정 장소를 재난 발생 시 대피소로 지정해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려인들과 동물권단체들은 동물 재난 대책이 사람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말한다.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7일 성명에서 “현재의 비상대처 요령은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국민의 안전에도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카트리나 피해가 발생한 2005년 동물을 두고 대피하라는 구조대원의 권유를 많은 주민이 꺼리는 바람에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동물해방물결은 당시 대피를 거부한 인구 중 44%가 ‘반려동물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다는 2006년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이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한꺼번에 위험에 방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을 대피하게 해야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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