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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청소년 낙태 리포트④] “욕 먹을까봐…돈 없어서…” 수술시기 놓쳐 몸 망가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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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란한 청소년’ 질타 두려워 혼자 쉬쉬… 수술 비용 문제 등 다중고

-비용 마련위해 시간 흐르면 임신 기간 늘어나고 비용도 늘어나

-전문가 “임신 청소년 사회적 낙인·차별 없어져야… 제도 지원 필수”

<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이러는 사이 정작 소외된 곳은 따로 있다. 청소년들의 임신이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그에 비례해 청소년들의 임신 사례는 늘어난다. 그러나 청소년 임신 문제은 관련 통계조차 없다. 헤럴드경제는 ‘있지만 없는 것’으로 외면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실태,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헤럴드경제

[일러스트=김소금 프리랜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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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부모님한테도 친구한테도 말 못했어요. 남자친구와 잠자리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 텐데 임신했다고 하면 대부분 욕할 것 같았어요. 고민만 하다가 며칠이 흘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임신중절을 했던 김모(25) 씨의 말이다. 그는 남자친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털어놨다. 갖고 있던 10만원과 대학생 남자친구가 소액대출을 받아 이를 합쳐 수술할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 조퇴를 하고 몰래 한 수술은 후유증이 컸다. 임신중절 수술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곧바로 학교와 학원을 가야만 했다. 김 씨는 “성인이 되고 임신과 피임에 대해서 더 알게 된 지금, 그때 얼마나 내 몸이 망가졌을지 생각하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임신 청소년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미성년인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는 자체가 1차적 비난 대상이다. 청소년 성문화에 유달리 보수적인 한국에선 성관계에 대해 일단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고 임신 사실이 알려졌을 경우엔 마냥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임신중절을 고민하고 있는 한 청소년은 “임신 사실을 밝히고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발랑 까진 게 아니냐’, ‘얼마나 문란하면 벌써부터 임신을 하느냐’ 등 비난할 게 두려워 움츠러든다”고 토로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평균 50~70만원 정도지만 임신 주 수가 높아지면 수백만원까지 오른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청소년에게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에게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임신중절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송이 탁틴내일 상담사는 “학생이 30만원 모아서 갔는데 100만원이라고 하면 돈 모으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한 달 뒤에 가면 임신 기간이 늘어나 비용이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라며 “임신 5개월이면 합법적인 경우라도 수술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습권도 보장받기 어렵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임신을 하게 되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퇴학 처리를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한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임신중절을 선택하게 된 주된 이유로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55.9%)’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연인, 배우자 등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서(37.5%)’,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22.6%)’가 뒤를 이었다.

음지에서 행해지는 중절 수술은 청소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임신중절 약을 오남용해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심지어 심한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많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소속 관계자는 “한 여고생이 인터넷에서 임신중절 약을 잘못 먹고 와서 자궁에 문제가 많은 상태로 방문한 적이 있다”며 “수술을 안 했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신한 청소년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겪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없애고 안전하게 임신중절을 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청소년도 똑같이 중요하다”며 “청소년 임신에 대해서 낙태를 종용하면서도 보장해주지 않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청소년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의료보험이 실시돼야 하고 필요하다면 요양의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sky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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