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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낙태죄’ 66년 만에 '폐지 예고'…'헌법불합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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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the L]내년말까지만 존속…개선입법 없으면 2021년 폐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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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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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헌재)가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달라진 헌재 인적 구성과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사실상 위헌인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1953년 형법에 낙태죄 조항이 도입된 이후 66년만이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오후 2시 헌재청사 1층 대심판정에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4 : 단순위헌 3 : 합헌 2 의 의견으로 최종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해당 조항은 2020년말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자기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나 한의사 등이 동의를 얻어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동의가 없었을 땐 징역 3년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헌재는 낙태죄 관련 조항에 대해 고심끝에 최종적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었고 합헌 의견은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이었다.

헌재는 자기낙태죄 조항의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여부에 관해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합한 수단이지만, 필요한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했다"고 위헌성을 설명했다. 이어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이어 헌재는 "입법자는 낙태의 형사처벌에 대해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이고 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기간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등에 관해 입법 재량을 가진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헌법불합치란 어떤 조항이 위헌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결정이다. 위헌을 선고해 어떤 조항이 바로 효력이 없어진다면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다. 그 시점 이후로 대상 조항이 개정되지 않으면 바로 효력을 잃는다. 이 사건에서 낙태죄 조항은 2020년 12월31일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바로 무효가 된다.

헌법불합치 결정의 경우 위헌 결정 중의 하나다. 하지만 기존에 낙태죄로 처벌을 받았던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단을 받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아 최종적인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서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의 경우 위헌 결정의 하나이므로 헌재에서 계속 적용을 명하고 있음에도 즉시 해당 형벌조항 소급해서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선고한바 있다. (2008도7562 전합) 이렇게 본다면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낙태죄 관련 재심 가능 여부는 향후 사건이 접수된 후 법원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었다. 이들은 "낙태죄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제14주까지의 임신기간에는 어떤 사유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아래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낙태죄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며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의견을 냈지만 소수에 그쳤다.

이번 사건에서 의견은 세 가지로 갈렸다. 하지만 단순위헌 의견과 헌법불합치 의견이 사실상 위헌 의견이기 때문에 이 둘을 합쳐 6인의 위헌정족수를 넘는다는 점에서 최종 '헌법불합치' 의견으로 선고가 이뤄졌다.

이번 결정을 앞두고 법조계에서는 헌재 내부의 변화와 낙태죄 폐지 여론에 힘입어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확률이 크다고 관측했고 이는 사실이 됐다.

위헌 결정을 위해서는 재판관들 중 6명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야 한다. 2012년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했을 때 8명의 재판관 가운데 절반인 4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나왔다.

당시 헌재는 “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새로 구성된 6기 헌법재판관들은 낙태죄와 관련 부정·신중 입장이 지난 재판부에 비해 늘었다. 문재인 정부 신임재판관 6명 중 인사청문회 등에서 낙태죄에 대해 '위헌'이라거나 바뀔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현직 재판관은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은애·이영진 재판관 등 3명이다.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특별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헌재 내적 구성과 함께 사회적 분위기도 지난 합헌 결정 때와 사뭇 달라졌다. 미투 운동에서 촉발된 여권 권익 신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이번 선고가 예정됐을 때부터 여성단체 등은 낙태죄 폐지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한편 헌재는 이날 선고를 위해 특별 선고기일을 열었다.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이 오는 18일 퇴임을 앞두고 있어서다. 후임으로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마치고 최종 임명을 기다리고 있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mk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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