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8 (화)

[소년중앙] SF 속 진짜 과학 <끝>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가상현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안경 너머로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 거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수많은 가능성을 잡을 수 있는 세계로

오아시스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네트워크 속의 세계인 오아시스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함께 접속하여 활동하는 대규모 가상현실 세계죠. 장갑과 고글을 낀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다양한 세계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다양한 활동을 벌입니다. 산을 오르고 사막을 횡단할 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외계인과 대결하고 마법을 쓰며 용을 물리칠 수도 있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오아시스입니다.

꿈과 즐거움이 가득한 오아시스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바로 어딘가에 감추어진 3개의 열쇠를 모두 찾는 사람이 오아시스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세계에 매혹된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주인이 되고자 세상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착한 사람만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얻고 싶은 악당들도 이 경기에 뛰어들어 든 것이죠. 과연 오아시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거대한 게임 세계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장래, 세상에는 판자촌이 넘쳐나고 수많은 이들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갑니다. 여행 따위는 꿈도 못 꾸는 지옥 같은 세계가 된 것이죠. 오아시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세상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오아시스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의 세계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 세계 속의 무언가죠. 거리 곳곳에서(심지어 집에서도) 입체 영상을 보여주는 안경과 손의 정보를 전달하고 감촉을 느끼게 하는 장갑을 사용해 진행하는 VR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오아시스는 현재의 VR 기술보다도 훨씬 뛰어난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우선 영상을 보여주는 안경은 가볍고 훨씬 세밀한 영상을 보여주죠. 장갑을 이용해서 손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사방으로 움직이는 러닝머신(360도 트레드밀)에 타면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여기에 따로 판매되는 감각 슈트를 입으면 충격이나 열, 냉기마저 몸에 전해집니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무한한 세계를 맛볼 수 있죠. 이러한 기술 대부분은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오아시스의 대단한 점은 지구처럼 거대한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양한 체험을 만끽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블랙홀 속을 여행하는가 하면, 먼 옛날 사라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찾아 책을 볼 수도 있습니다. 바닷속 깊은 곳도, 또 다른 차원의 세계도 오아시스에선 모두 방문할 수 있습니다.

어벤져스와 함께 하늘을 날며 악을 물리치거나, 아니면 터닝메카드 세계에서 변신로봇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왓슨이 되어 셜록 홈스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반대로 셜록 홈스를 속이는 범죄자가 되어 활약할 수도 있습니다. 오아시스에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유롭게 변하여 행동할 수 있어요. 심지어 목소리까지 바꾸어주는 만큼, 게임 세계 속의 나는 현실의 나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매력적인 오아시스의 세계는 자칫 현실을 잊어버리고 끝없이 몰입되게 만들지도 모르거든요. 영화처럼 지옥 같은 세계라면 더욱 현실을 잊고 게임에만 빠져들고 싶을지도 모르죠. 얼굴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거나, 가짜 뉴스를 마구 퍼트릴 수도 있고, 욕설과 비방을 하며 남들을 불쾌하게 만들지도 몰라요. 해킹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도 얼마든지 벌어지겠죠.

물론 오아시스에는 그러한 문제를 넘어서는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오아시스를 통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타고 역사를 배울 수 있으며,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강의를 직접 들을 수도 있습니다. 부서진 둔황 석굴이나 불타버린 노트르담 사원을 구경하며 문화를 소중히 해야 함을 느끼거나,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북극에서 환경 파괴의 영향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오아시스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을 초월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영국에서 한 소년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선천적인 질병으로 집에서 나갈 수도 없었던 소년이지만, 기묘하게도 소년의 장례식엔 유럽 전역에서 많은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모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소년을 만났고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죠. 그들은 소년을 장애인이 아니라 훌륭한 전사로서 기억해 주었고, 소년의 죽음을 함께 슬퍼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인종, 성별, 나이가 다른 다섯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계를 구하고자 노력했듯이, 나아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하나가 되어 악에 맞서 싸웠듯이, 우리는 가상현실을 통해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더욱 큰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에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제가 한 팀이 되어 세상을 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SF 속의 상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 우리의 노력에 따라 그 세계는 얼마든지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레디 플레이어 원’이, 그리고 무수한 SF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중앙일보



글=전홍식 SF & 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