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형
달큰한 비린내를 맡으며 통증처럼
누군가 욱신욱신 그립다
삼월의 창문을 열어놓고 설거지통 그릇들을
소리 나게 닦으며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자꾸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다
온 집안을 빙글빙글 바람개비 돌리며
바람이 좋아 바람이 너무 좋아 고백하는 내게
어머니는 봄바람엔 뭐든 잘 마르지 하신다
초봄 바람이 너무 좋아 어머니는
무엇이든 말릴 생각을 하시고
나는 무엇이든 젖은 생각을 한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참 좋다.
창문을 열어놓고 겨울 동안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한다.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자꾸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다.
온 집안을 빙글빙글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바람이 좋아, 바람이 너무 좋아, 고백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봄바람엔 뭐든 잘 마르지 하신다.
어머니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시고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생각한다.
마른빨래에서 덜 휘발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달큰한 비린내를 맡으며 통증처럼 누군가 욱신욱신 그립다.
연둣빛 나무에 걸려있는 봄바람에 몸을 맡긴다.
초봄 같은 시절의 나를, 또 누군가를 생각하니 눈가가 젖기 시작한다.
나도 어머니 나이가 되면 봄바람이 불 때 어머니처럼 무엇이든 말릴 생각만 할까?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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