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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권영민의사색의창] 방탄소년단과 문화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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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의 활약이 매스컴을 들썩인다. 영국의 유명한 밴드 비틀스 이후 이렇게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남성 그룹이 없었다는 점에 모두가 환호한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는 소식까지 덧붙여지고 있으니 그 인기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물론 미국의 중요 언론은 그 반응이 약간씩 결을 달리한다. 놀라워하면서도 무언가 다시 확인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미국 맥도날드 햄버거가 전 세계에서 팔리고 스타벅스 커피숍이 각국의 중요 도시에 늘어선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내는 영화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국 팝가수 비욘세의 노래에 세계의 젊은이가 열광한다. 이런 일은 미국인에게 너무도 당연하며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산 김치와 라면이 미국 슈퍼마켓에 즐비하고 한국의 연안 바다에서 나오는 김이 미국인이 좋아하는 맥주 안주로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기이하고 새롭다. 더구나 팝의 본고장에서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이 누리는 인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일보

권영민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열기를 두고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지칭하는 ‘한류현상’이라고 말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미국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문화상품’의 대중적 소비와 그 흐름을 놓고 본다면, 문화의 세계화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발신자의 입장에 서 있는 한국에서 본다면 이것은 당연히 ‘한류’의 하나로 치켜세울 만하다. 그러나 수신자로서의 세계 각국의 대중은 그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으로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즐기며 모두 하나가 된 지구를 떠올릴 것임이 분명하다.

유튜브라는 특이한 매체는 전 세계 젊은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방탄소년단의 전신자(傳信者)로서 자신들의 존재와 역할을 강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방탄소년단을 하나의 잘 기획된 ‘문화상품’이라고 한다면 이 특이한 현상은 결국 세계화라는 물결에 의해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문화시장의 역동성을 그대로 말해주는 셈이다.

그렇지만 방탄소년단은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문화상품’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러한 주장은 방탄소년단의 등장과 그 역할과 대중적 인기를 경제 논리에 의해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방탄소년단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본다면 방탄소년단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음악과 춤에 대한 열광적 환호는 금방 시들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언제 어디서든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방탄소년단에 관한 강의가 개설됐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 봄 학기에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 방탄소년단’(Next Generation Leaders: BTS)이라는 강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버클리대학은 ‘디칼’(DECAL)이라는 약자로 흔히 표기하는 ‘민주적 교육 프로그램’(Democratic Education at Cal)을 폭넓게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버클리대학 학생이 직접 개설하고 스스로 참여해 지식을 공유하는 열린 교과과정이다. 물론 지도교수도 있지만 모든 과정을 학생 스스로 설계하고 운영하고 조사 보고하고 토론한다. 과목당 일정 기준에 의해 2학점을 자율적으로 부여하는데 평점을 하지는 않는다. 이번 봄학기에는 이런 교과목이 177개나 운영되고 있으며, 과목당 대개 30명 안팎의 학생이 참가하고 있다.

버클리대학 학생들이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라는 주제로 방탄소년단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직접 교과과정을 설계해 운영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것은 동년배의 미국 대학생에게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그 활동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의 어떤 징후로 읽혀지고 있음을 말한다.

든든한 기획사가 잘 훈련시켜 세상에 내놓은 ‘문화상품’이 아니라 21세기 초반 세계 문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뮤지션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방탄소년단은 이제 남이 입혀주는 멋진 의상, 유명 음악인이 만들어주는 음악,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터득한 현란한 몸짓, 그리고 전 세계 같은 또래가 보내주는 환호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방탄소년단이 21세기 문화의 새로운 흐름 속에 음악적 정체성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앞장서서 추구하고 대중이 뒤에서 지지하며 따를 수 있는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비틀스가 자신들의 음악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의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것처럼 방탄소년단은 자기 음악에 집중하면서 자기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열어가야 한다.

전 지구상에서 방탄소년단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윤리, 방탄소년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예술과 미학에 자기 색깔의 음악의 옷을 입힐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대중의 인기는 허망하게 바로 사라진다. 방탄소년단이 잘 팔리는 ‘문화상품’으로 지금의 대중적 인기에 만족할 것인지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위대한 뮤지션으로 커나갈 것인지는 이제 방탄소년단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권영민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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