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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서소문 포럼] 알파고 시대의 일자리 혁명, 우리 직업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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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3년도 더 됐지만, 아직도 생생한 알파고 충격. 2016년 3월 이세돌 9단에 대한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압승은 기업 마케팅 역사에 남는 성공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 이 이벤트 덕분에 구글은 당시 군웅할거 하던 초기 글로벌 AI 시장에서 1년 만에 70% 넘는 점유율을 거머쥐었다. 당시 구글 AI 브랜드의 광고홍보 효과는 수천억 원으로 추정됐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6층 대국장은 내로라하는 각국 젊은 AI 엔지니어들의 순례 성지가 되는 바람에 호텔 측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진보를 거듭한 알파고 제로는 세계 최고수들조차 두세 점 깔고도 이기기 어려운 ‘바둑의 신(神)’ 반열에 올랐다.

AI는 이후 치열한 업계 경쟁을 통해 바둑 말고도 산업과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적어도 전문성과 무오류 면에서 인간을 멀찌감치 따돌린 AI에 대응해 인간의 직업과 노동은 도대체 어떻게 될는지가 큰 화두다. 일자리 위협은 상식에 속한다. ‘기술 난민’이 늘면서 이미 속도가 붙은 노동시장 분화와 융합을 더욱 촉진할 거라는 데 대다수 전문가는 공감한다.

가령 미국에선 정규직의 반대말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한정노동(work with limits)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잡지 못해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는 경우와 달리 어떤 이유로 임시직을 자청하는 일본의 프리터(Freeter)족같은 부류다. 낮에는 우버 택시기사, 저녁에는 배달원으로 일하는 식의 자발적 임시직, 기그(Gig) 노동이다. 내가 근로자인지 사업주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알바생보다 적은 수입을 가져가는 편의점 등의 자가노동 영세자영업자들이 그런 신세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일=고통’ ‘여가=쾌락’이라는 2분법 가정으로 임금 결정이론을 펼치지만 이런 전제에 대한 생각은 꽤 달라졌다. “일이라는 에스프레소 위에 여가라는 달콤한 크림을 더해 삶이라는 한 잔의 맛있는 카푸치노를 완성한다”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비유가 일례다. 심지어 에스프레소와 크림이 완전히 뒤섞인 카페라테가 삶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이런 판에 주 52시간 근로제를 들이대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대의명분이 무색해진다. 기자가 일과 후 취재원과 저녁 하는 자리가 일인가 여가인가.

일과 공부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사회와 직장은 공교육이 못다 한 교육의 상당 부분을 떠맡는다. 문재인 대통령 교육 공약 중 고교만 나와도 취업이 잘되고 대학은 나중에 가든지 말든지 하는 ‘선 취업, 후 학습’이 청년실업 대책으로 추진되지 않는 것이 영 아쉽다는 전문가(조영태 서울대 교수)가 많다.

오는 26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일과 노동의 미래: 자동화를 넘어 연대와 성숙으로’ 세미나의 초고를 접하게 됐다. 경제·경영학과 미래학·언론학·교육학·사회학·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학자적 관점을 망라하고 루트임팩트 같은 현장 전문업체들까지 머리를 맞댄다. 어떤 일자리가 유망하거나 불안한지 콕 짚어주려 하기보다 AI 시대에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고 찾아갈 것인지 묻는다. 그런 노력의 사례로 히어로 스쿨, 어썸 스쿨, 모두의 연구소, 헤이조이스 같은 풀뿌리 현장 실험들을 보며 길을 모색해 보라고 권유한다.

발표자료 중에 정치인과 관료를 향한 주문이 눈길을 끈다. “수조원 예산을 배정하고 (4차 산업혁명) 전문인력을 양성하라고 과거처럼 독려하면 될 것처럼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에 … (민간과 현장의)혁신적 행위를 방해하는 제도나 규범이 없는가 살피고 손보는 일을 업무로 삼는 편이 낫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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