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투자·제작·콘텐츠 저작권 독점 심화
허약한 국내 생태계..'문화 종속' 우려
지난 1월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제작발표회장<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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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글로벌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의 한국시장 공략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콘텐츠 산업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직접 투자 또는 제작에 나서거나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일체를 독점하면서 국내 콘텐츠 생태계의 종속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24일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넷플릭스가 독립영화계 유명감독과 접촉해 프로젝트를 제안했으나 저작권 등 권리 일체를 양도하는 문제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접촉한 제작자들 중에는 다큐멘터리 PD 출신으로 독립영화쪽에서 두각을 보인 진모영ㆍ이충렬 감독 등이 있다. 진 감독은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를, 이 감독은 '워낭소리'를 연출했다.
넷플릭스는 이들에게 수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제시하면서 권리양도를 요구했지만 이들 감독이 받아들이지 않자 협상이 결렬됐다. 배 사무국장은 "원활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국내 제작사의 사정을 꿰뚫고 큰 금액을 제시하면서 콘텐츠산업의 원천기술까지 가져가려는 것"이라며 "그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내 콘텐츠 제작시장이 단순 하청업체 수준으로 종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본거지 미국에서도 자체제작 콘텐츠를 왕성히 선보이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부터는 가입자를 받는 동시에 점차 국내 콘텐츠제작업계와도 접촉해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외에서도 인기를 끈 '미스터션샤인'이나 미국 외 국가 가운데 투자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전해진 '킹덤'도 국내업체가 제작했다. ▶관련기사 5면
넷플릭스로 인해 소비자의 채널선택권이 확대되고 콘텐츠제작사 입장에서도 해외 진출기회가 늘어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콘텐츠산업의 경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향후 꾸준히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이를 특정 플랫폼이 독식할 경우 '문화 종속'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저작권ㆍ엔터산업분야 전문성을 갖춘 대형로펌의 변호사와 자문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국내업체와 계약 과정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저작권을 넘기는 건 과거 국내 방송사ㆍ외주제작사와의 관계에서도 관행처럼 이어졌던 일"이라며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후 2, 3년간 제작 환경을 지켜보면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고 판단해 한층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넷플릭스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특히 넷플릭스의 불공정계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최근 간담회에서 넷플릭스를 예로 들며 "국내 콘텐츠시장이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될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관계 부처 간 대응하겠다는 점을 피력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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