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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Tech & BIZ] 美비자 8번 퇴짜 맞았지만 22년 만에 창업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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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증시에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줌(Zoom)이 상장했다. 하필 사진 공유 소셜 미디어로 유명한 핀터레스트가 같은 날 상장하면서, 줌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증시의 반응은 달랐다. 줌은 상장 첫날에만 주가가 72% 폭등했고, 22일에도 주가가 6% 더 오르면서 시가총액이 168억달러가 됐다. 핀터레스트(120억달러)를 일찌감치 추월했고, 미국 2위 차량 공유 업체인 리프트의 시가총액(172억달러)도 코앞까지 따라붙었다. 비결은 '실적'이었다. 줌은 기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과 달리 이미 상장 전부터 매출과 이익을 동시에 내고 있었다. 지난해 매출은 3억3000만달러, 순이익은 760만달러에 달했다.

줌을 창업한 사람은 중국 출신인 에릭 위안(Yuan·49)이다. 그는 1997년 미국에 처음 건너올 때 비자만 8번을 거절당하고 9수 만에 비자를 받았을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22년 만에 개인 자산 가치 37억달러의 억만장자로 우뚝 서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또 다른 표본이 됐다.

◇9수 만에 비자 받아 실리콘밸리로 가다

위안 CEO는 중국 산둥성의 한 시골마을에서 광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의 자질을 보였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공사현장을 다니며 자재를 줍고 이 중 구리를 추출해 돈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산둥 과기대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응용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베이징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처럼 되고 싶다는 이유였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는 쉽지 않았다. 짧은 영어 실력 때문인지 비자 인터뷰를 2년간 9번 한 끝에 겨우 통과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미국에서 그를 받아 준 곳은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의 2년차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웹엑스(WeBex)였다. 그는 거의 매일 밤을 새워가며 코딩을 했다고 한다. 금요일에 밤새 일하고도, 토요일 오후까지 계속 일할 정도였다. 이 회사가 2007년 미국 시스코에 인수된 이후에도 그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엔지니어로 남았다. 결국 그는 시스코의 웹엑스 사업부를 총괄하는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시공간 제약 없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2011년 위안 CEO는 시스코를 나와 줌을 창업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줌은 웹엑스를 정면으로 겨냥한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친정에 비수를 겨눈 격이다.

당시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시장은 시스코의 웹엑스, MS의 스카이프, 구글의 행아웃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각축장이었다. 하지만 지원하는 기기가 정해져 있었고, 사용하기 복잡했다. 위안 CEO는 이 제품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줌의 서비스는 스마트폰·태블릿PC·노트북 등 다양한 종류의 기기에서 끊김 없이 쓸 수 있다. 또 화상회의 인원도 수십명으로 늘릴 수 있고, 발언자를 자동으로 확대해 보여주는 기능도 있다. 뒷배경을 마음대로 바꿔 실제 장소를 숨길 수도 있었다. 휴양지에 있다가도 미팅 요청이 들어오면 배경을 사무실처럼 바꿔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

위안 CEO는 스스로 줌의 '홍보 대사'가 됐다. 그는 투자자건, 고객사건 외부인이 미팅을 요청하면 항상 줌을 소개하고, 줌으로 소통했다. 서비스 경쟁력을 자연스럽게 과시하고, 이들을 고객사·투자자로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또 기본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고, 추후에 더 많은 기능을 쓰려면 구독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프리미엄(freemium)' 방식을 적용, 수익성도 키웠다. 현재 삼성전자·우버 등 5만 개 이상 기업이 줌을 쓰고 있다.

위안 CEO는 지금 퇴근 후 항상 가족과 함께하면서도 미팅 요청이 들어오면 줌을 이용해 곧바로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그는 최근 기업평가 서비스 업체 글래스도어가 선정하는 '최고의 CEO'로도 꼽혔다. 당시 글래스도어 평가에 참가한 줌의 임직원 중 99%가 위안 CEO를 최고의 CEO로 지지했다.

강동철 기자(charl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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