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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SC] 남북정상회담 1년, 화가와 동행한 DMZ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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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지만은 않은 DMZ, 그곳은 평범한 땅

파주, 고성, 철원에 ‘디엠제트(DMZ) 평화의길’ 만드는 정부

조신호 화가 “관광으로 생태 망치지 말아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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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비무장지대(DMZ)에도 꽃은 피었다. 남북 정상이 만난 지 1년, 계절은 다시 봄이다.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부푼 ‘평화의 꿈’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으로 쪼그라들었다. 한반도 정세는 오리무중이지만, 비무장지대 관광 분위기는 들썩이고 있다. 행정안전부 등 5개 부처는 지난 3일 ‘디엠제트(DMZ) 평화의길’ 민간인 관광 개방 계획을 밝혔다. 오는 27일 강원 고성군을 시작으로, 강원 철원군과 경기 파주시 등 3개 지역 비무장지대를 관광지로 개방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 작업을 마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쪽 지역도 조만간 관광지로 개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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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내국인과 외국인들은 이미 비무장지대를 다녀갔다. 정부가 내놓은 ‘디엠제트(DMZ) 평화의길’ 코스 가운데 최전방 감시초소(GP) 철거현장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존 관광지들이다. 파주시가 집계한 지난달 비무장지대 관광객은 내국인 2만617명, 외국인 3만7913명이다. 전년 같은 달 대비 각각 4476명, 2만3423명 늘었다. 지난 4일과 19일, 경기 파주시 일대 비무장지대를 다녀왔다. 약 9년 전부터 파주시 비무장지대에서 야생 조류 등 동물 구조 및 생태 감시 활동을 하며,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조신호(55) 화가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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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10시30분,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를 건너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금단의 땅’은 허가받은 민간인 통행자도 아침 6시부터 12시간만 머물 수 있다. 한국전쟁이 중단된 1953년 7월27일 한반도에 휴전선(군사분계선)이 그어졌고, 그 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2㎞씩 뒤로 물러나 비무장지대를 정했다. 이듬해 비무장지대 남쪽 경계인 남방한계선 아래로 5~20㎞를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했다. 바로 이 민간인 통제구역 관광을 통상 ‘비무장지대 관광’이라 부른다.

임진강을 가로막은 철책을 따라 차를 달렸다. 강에선 어부들이 그물질에 한창이다. 강변 수풀 사이에서 뛰노는 고라니 서너 마리가 눈에 띄었다. 조신호 화가는 “이곳은 굶주리거나 다친 고라니들을 치료해 야생에 내놓는 방사장”이라고 말했다. 도로 반대편 공터는 지뢰(불발탄) 제거 현장이다. 멀리 군인 너댓명이 포클레인 주변에서 작업 중이다. 평화와 전쟁의 상흔이 공존하는 곳, 비무장지대를 본 첫인상은 마냥 평온하지도 시시각각 위태롭지도 않았다.

차량이 멈춘 곳은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 월동 서식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나려고 이곳에 온 독수리들은 번식지인 몽골로 이미 떠난 모양이었다. 거대한 뼛조각들이 수북이 쌓인 주변을 까마귀들이 서성였다. 조 화가는 “겨울에 마땅한 먹이가 없는 독수리들에게 조류보호단체와 파주시청이 소의 사체를 먹이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며 “가끔 다치거나 굶주려 떠나지 못하는 독수리들도 있는데, 올해는 그런 독수리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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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호 화가는 충남 태안 출신이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뛰놀고 망둥이를 낚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그의 인생에 한 획을 그었다. 당시 그는 고향과 이웃들을 걱정하며 ‘기름 제거 봉사활동’에 나섰고, 그 현장을 화폭에 담았다. 생태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된 계기였다. 파주 집으로 돌아와 동물 구조와 생태 감시 활동을 하면서, 점점 비무장지대의 생태에 마음을 뺏겼다. 그는 “이곳 생태가 망가지지 않도록 평생 감시하고 관찰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2월 ‘비무장지대 생태 이야기’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 안 비무장지대 원주민 등을 주제로 전시회 출품을 준비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선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보인다. 지난 4일 오전 11시30분, 비무장지대 대표 관광지인 제3땅굴은 오전부터 관광객들로 붐볐다. 중국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등 여기저기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 73m 제3땅굴은 1978년 발견한 남침용 땅굴로, 2004년 6월30일 도보 관람도를 개통했다. 약 358m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폭 2m, 높이 2m 안팎의 땅굴 265m 가량을 걸을 수 있다. 땅굴 탐방이 끝나는 곳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70m 떨어진 지점이다. 키 큰 외국인들은 노란 안전모를 쓴 채 고개와 허리를 숙여 걸으면서도, 신기하다는 듯 미소를 띤 얼굴로 땅굴을 오갔다. 제3땅굴 근처 도라산 전망대도 비무장지대 대표 관광지다. 3층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개성 땅을 볼 수 있다. 남한 대성동과 북한 기정동에 휘날리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한눈에 보인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며 한참동안 북한 땅을 들여다봤다. 외국인 관광 전문 여행사 코스모진 정명진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분단은 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라며 “최근 매해 비무장지대 관광객이 10~20%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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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조신호 화가는 임진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 있었다. 그는 임진강의 섬, 초평도를 스케치했다. 초평도의 모서리, 그 끄트머리에서 자라는 작은 나무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초평도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이라며 “그 모서리에 절제된 아름다움이 응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무장지대 관광을 하더라도 생태를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평도는 ‘비무장지대 속의 비무장지대’다. 섬의 남북으로 임진강이 흘러 사람들이 쉽게 발 디딜 수 없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지뢰의 위험을 우려한 주민들도 그곳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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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진달래가 듬성듬성 핀 파주 비무장지대는 푸르지만은 않았다. 통일촌(경기 파주 백연리)과 해마루촌(경기 파주 동파리)에 사는 농민들이 오래전 개간해 벼와 콩, 인삼과 사과를 심은 논밭들과, ‘지뢰 경고표지판’ 너머 쓰러진 나무와 정돈되지 않은 숲을 지나치다 보면 황갈색 땅과 수풀이 이곳의 진짜 이미지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 또한 철조망으로 에워싸여 있을 뿐, 사람이 살고 있고 과거가 묻혀 있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들이 아름다운 평범한 땅이다. 그 땅에도 여지없이 봄은 왔고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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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경기)=글·사진/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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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법

민통선 안 생태를 구석구석 탐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회원으로 야생조류 구조 및 먹이 주기 활동과 생태 파괴 감시활동을 하는 것이다. (문의 조신호 010-7306-3840)

‘디엠지 트레인’을 이용할 수 있다. 코레일 누리집에서 용산∼도라산역 왕복 열차와 비무장지대(DMZ) 여행 상품을 예약한다. 용산역에서 매일 10시8분 열차가 출발한다. 도라산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도라산 평화공원~도라전망대~제3땅굴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왕복 열차료 포함 가격 3만6000원. (letskorail.com 참고)

코스모진 등 여행사들을 통해 비무장지대를 관광할 수 있다. 제3땅굴과 도라산 전망대 등이 주요 코스다.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를 걸을 수 있다. 경기관광공사는 임진각 평화누리~통일대교~초평도~임진나루~율곡습지공원 주변 탐방로 9.1㎞(약 3시간 소요) 도보여행을 사전 예약을 받아 운영한다. 최소 7일 전 누리집을 통해 사전 예약한 예약자가 당일 10명 이상이면 탐방할 수 있다. 제한 인원은 총 150명. 매일 오전 9시30분(6~9월은 아침 8시30분)에 출발한다. 휴무일은 월요일, 화요일, 법정공휴일. 가격은 무료.(pajuecoroad.com 참고)

정부 시범사업인 강원 고성 ‘디엠제트(DMZ) 평화의길’ 관광은 누리집에서 사전 접수하고 무작위 추첨을 통해 방문자를 선정한다. 5월8~10일 관광은 4월18~30일 접수하고, 당첨자를 5월1일 공지할 예정이다. (durunubi.kr 참고)

◎갈 만한 축제

제1회 ‘DMZ민+평화손잡기’ 행사가 오는 27일 오후 2시27분,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을 잇는 약 10개 도시에서 열린다. 한반도 평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비무장지대 주변에 모여 약 500㎞ 거리를 손을 잡아 잇는 ‘인간띠잇기’ 축제다. ‘디엠지(DMZ) 평화인간띠운동본부’ 누리집(dmzpeacechain.com)에서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평화손잡기 지도’(goo.gl/xoY4CG?)를 보고 직접 맘에 드는 장소를 찾아갈 수도 있다.

김선식 기자



파주(경기)=글·사진/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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