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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치명적인 '쩐의 유혹'‥中 일대일로, 기회인가 함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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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함반토타항 부채 감당 못해 중국에 99년간 양도

일대일로 참여 국가와 국제기관 3년새 56→154개로 급증

G7 이탈리아 참여 선언으로 파장..독일이 최대 수혜국

일대일로는 양날의 검…“책임은 주권국가의 몫”

이데일리

△2018년 10월 18일 찍은 그리스 피레우스항구의 오래된 창구. 2016년 그리스정부로부터 운항권을 받은 중국 코스코해운그룹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코스코그룹은 피레우스항에 대규모 교각과 5성급 호텔 등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로 피레우스항 물동량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사진=AFP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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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함바집(공사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된 식당) 아줌마조차 중국에서 데려왔다”

스리랑카 함반토타항(港)이 건설될 당시 현지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중국이 스리랑카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자재·기계설비 등을 모두 중국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단행됐지만, 스리랑카 현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산업이 활성화되는 효과도 없었고 스리랑카인들의 고용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투자에 따른 ‘낙수효과’는 크지 않았다. 막대한 돈을 빌려 지어진 함반토타항은 완공 후에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함반토타항(港)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양도했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부채 함정”

함반토타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경제·정치적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중국의 ‘부채 함정’이라는 주장의 대표적 근거다. 이후 말레이시아, 몰디브, 파키스탄 등이 일대일로 차원에서 진행한 사업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한다고 하면서 이 주장은 힘을 더해갔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에게 일대일로가 중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대일로에 참여하라는 시 주석의 권유에 “중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유럽인 노동자 역시 건설과정에 참여해야만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일침했다.

일대일로가 진행될수록 중국의 패권이 공고해진다는 것 역시 이를 꺼림칙하게 바라보게 하는 요소다. 융커 위원장은 “중국 투자자들이 자국 영토를 돌아다니고 있는 나라는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와 헝가리는 중국 인권에 대한 EU의 비판 성명을 저지한 바 있다.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고 있는 EU에게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심각한 도전이다.

현재 세계의 맹주인 미국과 그 동맹국이 중국의 부상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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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중국 베이징 거리에 일대일로 포럼을 알리는 현수막이 늘어져 있다.[사진=AFP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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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영향력…中경제권이 경제를 좌우

커지는 두려움과 우려에도 일대일로는 순항하고 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56개에 불과하던 참여 국가와 국제기관 수는 154개까지 늘어났다. 최근에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는 처음으로 이탈리아가 참여를 선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2일 ‘이탈리아는 왜 일대일로 참여를 원하는가’라는 분석기사를 통해 중국 경제권과 이 EU 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지적한다.

EU의 가장 큰 교역상대국은 중국이다. 그러나 국경 간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에프디아이마켓(fDi Markets)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중국의 그린필드(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공장을 짓는 등의 국외 직접투자) 투자국가에서 이탈리아는 불과 76위에 불과했다. 같은 유럽연합(EU) 국가들과 비교하면 독일의 8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결국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는 중국과의 경제 접점을 넓히려는 노력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독일 뒤스부르크다. 독일은 일대일로에 참여한다는 선언을 한 적은 없지만, 가장 수혜를 누리고 있는 국가다.

한때 쇠락한 공업도시였던 뒤스부르크가 중국 충칭에서 출발한 화물 열차 ‘위신어우’(<물수변>+兪新歐)’의 유럽 종착지가 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뒤스부르크 복합운송 터미널의 국제개발 본부 책임자 아멜리에 에르스레벤은 FT에 “2014년 시 주석이 충칭에서 온 화물열차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린 뒤 중국으로부터 교통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매주 90편 가량 내항에 도착하는 열차 가운데 3분의 1이 중국 열차라고 전했다.

폭증하는 중국 비즈니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이 회사는 지난해 20만㎡의 부지를 빌렸다.

이것이 독일이 일대일로 참여를 결정한 이탈리아에 대해 “나중에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시 주석 앞에서는 “유럽국가들은 여전히 일대일로에 참여하길 바란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며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딜레마의 이유다.

◇일대일로는 양날의 검…“책임은 주권국가의 몫”

일대일로가 중국의 부채 함정이라는 지적은 왜곡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함반토타항의 실패가 과연 중국만의 책임이냐는 것이다. 애초 함반토타항은 사업 계획 당시부터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스리랑카 정부가 이를 밀어붙인 것은 자신의 고향에 항구를 세우고 싶었던 마힌다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 때문이었다. 심지어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항구 건설비로 빌린 돈 상당수를 자신의 선거 자금으로 활용했다.

이 반론은 그리스의 피레우스항 사례로 힘을 얻는다. 그리스가 중국 투자를 받았던 2010년은 그리스가 도산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파탄 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했지만 돈을 빌려주는 국가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손을 내민 것이 중국이었다.

이 항구의 물동량 순위는 중국의 투자를 받았던 2010년 당시 93위에서 지난해 38위까지 뛰어올랐다.

물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그리스정부는 피레우스항 운영권은 중국 코스코 해운그룹에 매각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피레우스항에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이 항구는 어쨌든 그리스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일대일로에 참여해 식민지가 될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3월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일대일로가 개발도상국을 빚더미에 앉게 하느냐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모하메드 총리는 지난해 취임 후 전임 정권이 진행했던 일대일로 사업을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중단시켰으나 수개월 협상 끝에 사업내용과 계약을 점검해 재개하기로 했다. 그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고위포럼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첫번째 국가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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