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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인터넷은행 '메기의 추억'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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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25일 KT를 담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KT가 국내 첫 인터넷 은행인 '케이뱅크'의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작년 IT 기업이 인터넷 은행 지분의 34%까지 가질 수 있게 허용하는 인터넷은행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KT는 4월 중 추가 투자를 통해 지분을 현재 10%에서 34%까지 늘려 케이뱅크의 대주주가 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법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5년 내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적이 있으면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공정위의 검찰 고발로 KT는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KT의 투자를 기다려 왔던 케이뱅크도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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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출범한 2호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도 같은 처지다.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 완화 1호 법안으로 인터넷은행법이 작년 국회를 통과했지만 공정거래법에 발목이 잡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됐다.

◇KT의 은행 경영 주도 가능성 희박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KT·LG·SK브로드밴드와 세종텔레콤이 지난 2015~2017년 공공 기관이 발주한 12건의 공공 분야 전용 회선 사업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사를 정해놓고 나머지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거나 일부러 높은 가격을 적어 내 '들러리'를 선 혐의로 4억~57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KT는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 고발 조치됐다.

은행 대주주 자격을 심사하는 금융위원회는 이날 "검찰 수사 및 재판 결과에 따라 처벌 수준이 확정될 때까지 KT에 대한 심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까지 2~3년이 걸릴 수 있어 사실상 KT가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게 금융권 다수의 관측이다.

케이뱅크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자금이 부족해 신규 대출 상품이나 새 서비스 출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데, 기다렸던 KT의 투자마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새 투자자와 접촉하는 등 자금 조달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과 금융권 안팎에서는 "케이뱅크가 살아남으려면 KT 대신 은행을 주도할 새 기업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은행 경영을 주도할 확고한 사업자가 있어야 책임지고 자금을 투자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데, 마냥 KT 혐의가 풀리길 기다리다가는 후발 주자에 추격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은행 경쟁력 저하 우려

카카오뱅크도 케이뱅크와 비슷한 처지다. 지난 3일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겠다며 금융위에 자격 심사를 신청했지만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 2016년 카카오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될 때 계열사 5곳을 신고하지 않아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다. 카카오는 5년 내 처벌받은 적이 있어도 금융위가 이를 '경미한 사안'이라고 판단할 경우 대주주가 될 수 있게 승인할 수 있다는 인터넷은행법 예외 규정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은행이 혁신 서비스를 통해 금융권에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수사 기관이나 금융 당국, 기업의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결정이 늦어져 인터넷 은행이 양질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고객들"이라며 "금융 당국은 원칙에 맞게 결론을 빨리 내고, 기업들은 미리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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