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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거다"며 홀로 탈출···친모 지른 불에 갇힌 3남매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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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불이 붙어 그만…” 친모의 수상한 알리바이
지난해 1월, 경찰이 송치한 ‘광주 3남매 화재’ 사건 자료를 받아본 광주지검 형사3부는 고민에 빠졌다. 숨진 아이들은 사망 당시 각각 15개월과 2세, 4세로 어렸다. 경찰은 어머니 정모(24)씨가 실수로 불을 냈다며 중과실치사ㆍ중실화 혐의를 적용했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언뜻 봐선 그럴듯 해 보였다. 2017년 12월 31일 새벽 2시쯤 남매가 자고있는 작은 방에서 불이 났다. 만취한 상태로 귀가해 잠든 정씨는 이를 처음엔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불길이 거세진 30분쯤 뒤에야 이를 알아챈 정씨는 울먹이며 남편에게 전화로 화재를 알렸고, 화재 신고도 했다. 양팔과 허벅지에 그을린 자국은 “아이들을 구하려 했다”는 정씨 진술과도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숨진 아이들에게 학대의 흔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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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3남매가 숨진 아파트 내부. [사진제공=광주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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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수상한 정황들이 눈에 밟혔다. 정씨는 화재 이유에 대해 경찰 단계에서만 진술을 3번 번복했다. 처음에는 “라면을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았다가 불이 난 것 같다”고, 다음 조사에선 “이불에 담뱃불을 지져 끄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담배 꽁초를 이불에 버렸다”로, 그 다음엔 “라이터로 담배 꽁초에 불을 붙였다”로 계속 바뀌었다.

“자살하겠다” 화재 도중 나온 문자 결정타
담배 꽁초가 큰 화재로 번졌다는 점도 이례적이었다. 정씨는 당시 불이 붙은 이불이 ‘극세사’ 소재였다고 했는데 정밀 감식을 해본 결과 극세사 소재는 담배 꽁초만으로 단기간에 큰 화재로 번지기 어려웠다. 설령 면 이불이었어도 조금 더 잘 타들어갈 뿐 불씨가 스스로 꺼져버렸다. 전문가는 “라이터 등을 이용해 이불에 직접 불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잠을 자느라 화재 사실을 몰랐다는 정씨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는 화재 직전 남편에게 ”죽을 거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정씨는 남편과 관계가 틀어져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화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는 분 단위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문자 메시지를 나눴다. 정씨는 자신이 사기를 친 중고 물품 판매 피해자에게도 “자살할 거다”고 썼고, 사귀던 다른 남자친구에게는 ”미안해“라고 문자를 보냈다.

또 정씨는 검찰에서 ”아이들과 함께 죽을 생각으로 불을 끄지 않다가 혼자만 탈출했다“는 말을 했다. 결국 검찰은 그에게 방화치사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현주건조물 방화치사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해 살인죄(5년 이상 실형)보다도 형이 무거운 범죄다. 당시 기소를 담당한 광주지검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밀 감식과 의료 감식, 포렌식을 처음부터 샅샅이 진행한 게 결정적이었다”고 전했다.

法 “아이들 극심한 공포감 느꼈을 것” 꾸짖어
법정에서도 정씨는 끝내 죄를 부인했다.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도 폈다. 1ㆍ2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정씨가 상고했지만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이를 기각하고 정씨의 형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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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정씨가 화재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왼쪽)과 숨진 3남매의 관을 운구하는 모습(오른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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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의 남겨진 가족이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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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정씨는 왜 스스로 불을 지르는 비극을 초래한 걸까. 법원은 정씨가 너무 어린 나이에 양육을 하게 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고 봤다. 그는 중학교 때 만난 남자친구와 17살에 결혼하고 이듬해 바로 애를 낳았다. 결혼 생활 동안 아이는 3명으로 늘었지만 정씨 부부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안됐다. 집세는 6개월 째 밀려 있었고, 아이의 유치원비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으며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중고 물품 사기를 쳐서 생활비를 충당해 왔는데, 한 달 전부터 피해자들이 그의 신상을 알고 독촉해오던 차였다.

1ㆍ2심 재판부는 “정씨가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계속 혐의를 부인한다며 호되게 꾸짖었다. 또 “3남매들은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끔찍한 고통과 극심한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20년의 형벌로써 정씨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짋어지게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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