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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한 지붕 세 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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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서로 소외된 채 각자의 반려로 위로받는 고독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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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두 종류의 반려가 산다. 내 반려식물, 남편의 반려물고기. 우리는 퇴근 뒤 각자의 반려만을 돌본다.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각자의 반려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 나는 발코니 화분 앞에서, 남편은 거실 어항 앞에서. 아마도 몇 년 뒤에는 새 식구, 반려를 맞아야 할 것 같다. 아이들도 자신의 반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려묘를 갖고 싶다고. 그렇게 되면 한 지붕 세 반려가 생길 것이다.

우리 집뿐이랴. 반려인구 1천만 시대라고 하지 않나. 국민 5명 중 1명이 반려인이라는 얘기다. 개, 고양이, 새 등을 친구나 가족으로 여기며 함께 산다는 것이다. 각각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반려 대상은 다르다.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식물, 물고기, 도마뱀, 인형 등도 있다. 소외되고 단절된 현대인에게 이토록 다양한 반려가 필요하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우리 곁에 있는 ‘반려’, 반려인의 삶을 통해.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상가 건물 1층에 작은 간판이 보인다. 강아지 모양의 그림 옆에 ‘동반북스’라고 쓰여 있다. 4월21일 찾은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2017년 문을 연 이곳은 반려동물 관련 책을 전문적으로 파는 서점이다. 책방에는 <반려동물 마음 알기> <히끄네 집> <고양이의 기분을 이해하는 법> 등 반려인을 위한 책 100여 종이 진열돼 있었다.

반려는 계산 없이 ‘오직’ 감정만

동반북스에는 책방 주인 심선화 대표와 그의 동반자인 고양이 ‘둥이’가 있었다. “둥이는 이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 찾아온 손님이에요. 옆집 가게 주인이 돌보던 길고양이인데 우리 책방을 연 뒤부터 여기에서 살아요.” 원래 심 대표 옆에는 첫 반려동물 ‘달래’가 있었다. 그러나 달래는 2017년 림프종에 걸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심씨는 아픈 달래를 통원 치료하려고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책방을 열었다. “달래랑 12년간 함께 살았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달래가 문 앞에서 반겨주고 졸졸 따라다니고 같이 자고. 가족보다 더 애틋했죠.” 달래의 빈자리에는 둥이 말고 반려묘 ‘망고’도 있다. 망고는 동네 아이들이 책방에 데려온 길고양이다.

이날 책방에 온 손님 이희수씨 역시 반려인이다. 이씨네는 이씨와 남편, 반려견 ‘까미’ 세 식구다. “까미를 키우기 전에 초등학교 때부터 10년 동안 키운 고양이 ‘나비’가 있었어요. 가족같이 지낸 나비가 죽고 무척 힘들었어요.” 새 반려를 맞은 이씨는 처음 키우는 개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읽는다. “반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돼요. 그리고 내가 까미에게 사랑을 주는 만큼 다시 받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 전문 책방이라 이곳을 찾는 “손님들 90%는 반려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반려동물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심 대표는 “반려동물에게서 사람에게 느끼지 못하는 다른 감정을 느껴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학연, 지연 등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잖아요. 반려동물과는 그런 게 없으니 오직 감정만 있는 거죠.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관계라고 할까요. 그 관계가 주는 편안함과 기쁨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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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 1천만 시대… 동식물에 인형도 반려



심씨나 이씨에게 둥이와 까미는 동반자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사육한다는 의미의 ‘애완’(愛玩)이 아닌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가족으로 여긴다는 의미의 ‘반려’(伴侶)인 것이다. 반려인은 이들뿐 아니다. 통계청이 2017년 7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는 1천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는 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며 동물권을 인정하기 시작한 유럽에서 처음 쓰였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해 애완동물을 사람의 장난감이 아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반려동물’로 칭하자”고 처음 제안했다.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이 용어가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된 뒤부터 ‘반려동물’이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공식 용어가 됐다.

반려인구가 점점 느는 이유는 평균수명 연장, 1인가구 증가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예전보다 길어진 삶의 시간을 함께하는 ‘반려’에 대한 욕구를 동물에게서 찾은 것이다.

반려인의 증가는 곧 외롭고 고독한 현대인이 많다는 것도 의미한다.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의 저자인 장근영 심리학자는 <한겨레21>과 한 전화인터뷰에서 “관계 단절로 소외된 현대인들은 우울한 마음을 보듬어줄 위로의 존재를 찾아요”라고 말했다.

디지털 관계 ‘피로’·오프라인 만남 ‘부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받는 피로도도 높다. 경쟁사회에서는 옆에 있는 친구나 동료가 적이 될 수 있고, 누군가를 이기고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겪는 다소 불편한 관계보다 반려동물을 통해 괴로움이나 외로움을 지우며 위안을 얻곤 한다.

스위스 심리학자 피에르 슐츠는 책 <개가 주는 위안>에서 개가 인간의 정신작용을 돕고 조율하는 무형의 서비스를 ‘에그조프시시즘’(Exopsychisme)이라 명명한다. 그것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이유와 괴롭히는 마음 상태를 끊어주는 방어막이 된다고 얘기한다. “실망이나 외로움 혹은 불행이 닥쳐올 징조나 가능성이 보이면 미리 관리하는 전략을 써야 하는데, 그런 전략 중 하나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면 왜 지금 우리 옆에 ‘반려’가 있을까. 한국반려동물매개치료협회 김복택 회장은 “소셜네트워크 등 디지털 관계를 맺으며 피로감이 쌓이고 오프라인 만남에서는 관계 비용 부담이 높아진다”며 “대신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인간은 그 감성을 나눌 반려동물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려식물 인테리어>를 쓴 지은이 송현희씨에게 반려식물 ‘율마’는 변하지 않는 친구 같다. 율마는 사계절 비슷한 모습이다. “일 끝나고 밤에 발코니에 있는 율마에 물을 주고 보고 있을 때 제일 편안해요. 율마에게 준 건 물뿐인데 새싹을 틔우는 모습이 기특해요. 내가 준 것보다 더 큰 걸 받는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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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평가·비난 않는 반려는 치유사”



반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18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및 양육 현황 조사 보고서’ 결과를 보면 만 19∼59살 반려동물 양육인 1천 명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것’에 대해 물었더니 ‘반려동물’이 41.6%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가족(24.8%), 돈(9.9%), 여행(9.4%)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존재가 가족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얘기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자신은 어떤 변화를 느끼느냐’라는 질문에 적극성·운동량·스트레스·외로움·활기참 등 8개 항목에서 가장 큰 변화는 ‘외로움 감소’(73.7%)이고, 그다음은 ‘스트레스 감소’(63.6%)라고 대답했다.

반려묘 두 마리를 키우는 장근영 심리학자는 “말없이 들어주고 나만 바라보는 고양이는 훌륭한 치유사”라고 이야기한다.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에서도 고양이에 대해 “그저 바로 곁에 앉아 다른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인의 두 눈을 주의 깊게 응시하며 주인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치유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고 썼다.

무엇보다 반려동물은 완벽한 내 편 같단다. “인간관계에서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혀 있고 자기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계산도 해야 하잖아요. 내 결점을 보이면 안 되고. 하지만 반려에게는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날 평가하지도 않고 비난하지 않으니까.”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반려동물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에 대해 <한겨레21>과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무언가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이나 성취를 하면 도파민이 나옵니다. 반려와 있을 때는 대상과의 교감과 연결감으로 인해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나와요.”

동아대 권명아 한국어문학과 교수도 <한겨레21>에 “반려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홀로 외롭게 내버려지지 않을 권리’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지 않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한 권리다.

또 권 교수는 반려를 통해 서열 중심의 교육제도와 경쟁 위주의 사회적 관행에서 배우지 못한 새 관계 맺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반려를 돌본다는 것은 애착 관계성을 회복하는 일이에요. 그러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더불어 산다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나 아닌 존재에 대한 공감 키우는 것”



반려 대상도 다양해졌다.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물고기, 새 등도 누군가의 반려가 된다. <곰돌이가 괜찮다고 그랬어>를 쓴 정소영 작가의 반려는 인형이다. 정 작가는 인형을 수집하거나 인형뽑기방에 가지 않는다. 그에게 인형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반려에 대한 책임이나 돌봄의 자세는 여느 반려와 다르지 않아요. 반려 대상만 다를 뿐이죠.” 하지만 인형 반려인을 보는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단다. “삶의 곁을 나누는 대상이 다양해지고 돌봄의 감수성을 넓혀간다는 시선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장근영 심리학자도 “반려의 삶을 통해 인간과 다른 종, 사물에 대한 관심과 공감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곁에 ‘반려’가 필요하다고. 아주 간절히.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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