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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강원산불 한달] ⑥ "큰비 오면 어쩌나" 검은 야산 접한 산사태 취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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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인흥3리, 쓰러진 나무·손상된 사방시설 등 위험투성이

2002년 태풍 '루사' 산사태 악몽에 주민 불안…군, 응급복구 추진

연합뉴스

산사태 우려되는 산불피해 마을
[촬영 박영서]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지 어느덧 한 달을 앞둔 5월의 첫날.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흥3리로 들어가는 굽이진 길 주변 산은 푸른빛을 잃은 채 온통 신음하듯 말라가고 있었다.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인흥3리는 산사태 위험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피해지역 야산 대부분이 해발 100m 안팎으로 높진 않지만, 인흥3리는 민가와 야산이 등을 맞대고 있어 산사태 응급복구 대상 1순위다.

마을회관을 등지고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자 폭삭 주저앉아버린 집 뒤로 생기를 잃은 검은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법 경사가 심해 조금만 올라도 마을 전체가 손에 잡히고, 가파른 비탈길 곳곳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검게 탄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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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집 뒤로 드러난 검은 야산
[촬영 박영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져 민가 코앞까지 들이닥친 나무와 돌덩이들도 눈에 띄었다.

집 뒤편 돌담은 집과 함께 허물어져 있어 당장 손을 보지 않았다가는 심각한 2차 피해가 일어날 것만 같은 아찔하고 위태로운 상태였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이 지역에 산사태가 일어나 이웃 1명을 잃었다.

주민들은 17년 전 태풍이 들이닥친 그때의 기억을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주민 김용하(80)씨는 "루사 때 산이 내리 까면서 다 무너졌지. 이젠 산불에 나무가 없으니 뿌레기(뿌리의 강원도 방언)가 다 흘러내리지"라며 혀를 찼다.

이정숙(77)씨도 "소나무가 있어서 참 좋았는데 다 타버리고 쓰러진 모습을 보니 불안해요. 루사 때처럼 산사태가 날지 누가 알겠어요"라며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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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응급복구 시급한 산불피해 마을
[촬영 박영서]



산사태 방지를 위해 당장 민가 주변부터 산 정상부근까지 설치해야 할 옹벽 길이만 500m 정도다.

타버린 나무는 지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뿌리만 남긴 채 밑동을 잘라 내고,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이때 민가와 가까운 곳은 키가 작은 나무를 심고 위로 올라갈수록 키가 큰 나무를 심어야 강풍이나 폭설로 인한 주택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간격도 10m 정도로 일정하게 복층 산림이 되도록 하고, 토양의 성질을 고려하면서도 굴참나무, 황벽나무, 마가목 등 불에 강한 내화 수종을 심어야 해 복구 작업이 절대 간단치만은 않다.

여기에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손상된 사방시설을 손보고, 잘못 난 물길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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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응급복구 시급한 산불피해 마을
[촬영 박영서]



특히 사유지는 복구해주고 싶어도 주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손댈 수 없어 차일피일 방치하다가는 더 큰 피해를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산림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불 발생지역 산림은 토양 접합력이 약해져 토사 유출 방지기능이 130배가량 떨어지고 수분 저장기능도 절반으로 감소한다.

물 전문가인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전체 강우량 중 땅에 흡수되지 않고 유출되는 비율인 '유출계수가' 일반 산림에서는 0.3수준이지만, 산불 이후에는 0.7∼0.8까지 높아진다.

산불로 나무들이 장마철 빗물을 모아주는 '자연 댐'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산불 피해지역에는 빗물이 2배 넘게 흘러내려 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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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 후 늘어난 물의 양
[촬영 박영서]



주민들은 실제로 최근 20㎜ 안팎의 비가 내린 뒤 용촌천으로 이어지는 지류에 흐르는 물의 양이 평소보다 2배나 늘었다고 말한다.

김성혁(67)씨는 "나무가 타버리고 나니 비가 오고 나서 1∼2시간 뒤에 물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며 "며칠이 지났는데도 물의 양이 많아진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흉하게 타버린 숲을 둘러보며 "한국전쟁 후에 민둥산에서 이렇게 울창해지기까지 50년이 걸렸는데 죽기 전에 울창해지는 걸 보긴 힘들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냥 푸르게 할 목적으로 복구한다면 잘못된 것"이라며 "신중하게 복구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고성군은 인흥리 산72번지를 비롯해 토사 유출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가장 큰 인흥3리 4곳 4.2㏊를 대상으로 응급복구에 나섰다.

이달 초까지 사방사업 실시설계 용역을 끝내고, 응급복구 공사에 들어가 6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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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우려되는 산불피해 마을
[촬영 박영서]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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