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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일촉즉발' 중동 정세…'이란 핵합의' 이전으로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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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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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이란에는 다른 길이 없다."


미국의 항모전단과 B-52 전략폭격기가 페르시아만을 향해 날아오는 상황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주요국에 보낼 것으로 알려진 서한의 내용이다. 이란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5개국+독일과 2015년 체결한 이란핵협정(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약속을 이행할 수 없게 됐다며 밝힌 통첩이다.


이란이 핵 합의 일부 불이행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동 정세는 시계 제로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일단은 핵 합의 전면 파기가 아닌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일탈'을 감행할 전망이지만 미국과의 갈등이 계속 고조될 경우 향후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 불가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자칫 그동안 국제사회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이란 핵개발 시계가 2015년(핵 합의) 이전 상태로 되돌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이날 핵 합의 일부 불이행 및 미국ㆍ유럽의 합의 위반 사실에 대한 항의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해 5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 합의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다.


현재로서는 이란 정부가 전면 탈퇴를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준관영인 이란 ISNA통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정부가 핵 합의 26조, 36조, 즉 상대방이 핵 합의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고 최종 결론을 내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또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을 뺀 나머지 서명국에 "이란은 최대한 인내했으나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에 상응해 핵 합의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는 수준을 점차 낮추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은행 거래와 원유 수출을 미국이 핵 합의를 탈퇴하기 이전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게 이란의 명확한 요구"라고 전했다. 즉 이란이 미국처럼 일방통행식으로 탈퇴를 감행하는 대신 절차를 밟아 명분을 쌓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과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실제 이란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경우 2015년 7월 체결된 핵 합의로 한동안 진정됐던 이란발 중동 핵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란의 이런 움직임은 물론 미국의 초강경 제재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5월 핵 합의 탈퇴 후 8월 대이란 제재를 전면 복원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석유 수출 금지 등 경제ㆍ금융 분야에 대한 제재를 추가했다. 이후 지난달 이란 정규 군사 조직인 혁명수비대를 사상 최초로 '국제 테러 조직'으로 지정해 제재를 가하는가 하면, 지난 2일 오전 0시부터 한국 등 8개국을 대상으로 인정해주던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예외 조치의 연장도 불허했다. 또 석유화학제품 수출 금지 및 관련 외국 금융기관ㆍ기업에 대한 제재 확대 등 말 그대로 '최대한의 압박' 작전을 구사 중이다.


미국의 탈퇴 후에도 합의 준수를 약속한 유럽 서명국과 EU에 대한 항의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최근 확인했듯이 이란이 지난 2년여간 핵 합의를 준수했음에도 유럽 국가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경제적 이득을 전혀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 서명국과 EU는 이란의 경제적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이란과 유럽 기업이 교역할 수 있는 금융 전담 회사 '인스텍스'를 올해 1월 설립했지만 공전하고 있다. 자국 내에서 핵 합의 이행에도 얻은 게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이란 내부적 요인도 만만치 않다.


이란의 핵 합의 일부 불이행 소식에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곤란해졌다.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란이 협정을 위반할 경우 제재를 다시 부과해야 한다"면서 "이란 측에 서한을 보내 협정을 계속 준수해달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중동 정세의 불안 고조도 불가피하다. 당장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있다. 이란 해군은 지난달 말 미국의 원유 수출 제재 강화 조치가 예고되자 "함정을 동원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현재 중동에 배치될 예정인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대한 공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란의 핵무장은 이미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갈등을 격화시킬 전망이다. 아랍 국가 내 수니파와 시아파 등 종파 갈등의 촉매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시아파 중심의 이란이 핵무장에 성공할 경우 수니파가 장악한 사우디아라비아 등에는 엄청난 위협으로 작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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