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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아버지가 "사이좋게 이끌라" 했는데…한진 `경영권 갈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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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진가 사람들. 왼쪽부터 이명희·조원태·조현아·조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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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인은 삼성 같은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의 경우 주력 계열사에 대한 지분이 많아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연인을 뜻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용어로 특정 대기업집단의 '회장'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이 올해 1월 1일자로 코오롱그룹 회장직과 지주회사 (주)코오롱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여전히 이 전 회장을 코오롱그룹 동일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코오롱 지분 49.74%를 갖고 있고 이 대기업집단 경영 활동에 대한 직간접적 지배력이 가장 높은 인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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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통상 매년 2월께 동일인 희망자 본인의 자필 서명을 포함한 대기업집단의 의견서를 받아 해당 인물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데 지난해 삼성그룹, 롯데그룹의 경우처럼 대기업집단 의견과 달리 공정위 판단에 따라 동일인을 바꿔 지정하기도 한다.

총수 별세 이후 새 총수를 유족들이 결정짓지 못해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 발표가 연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별세 이후 사실상의 총수 격인 새 동일인을 놓고 유족들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주변에서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범위에서 상호 납득 가능한 조양호 전 회장 유족들 간 주식 등 재산 배분을 합의해야 하는 한진그룹 특유의 상황이 총수를 지정하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행동주의펀드 KCGI(한국지배구조개선펀드·일명 '강성부 펀드')는 한진칼 지분율을 지난달 말 기준 14.84%까지 늘려왔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 조양호 전 회장 지분이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 등 특정인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게 조 전 회장 별세 이후 재계와 관가의 관측이었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공정위에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조양호 전 회장 아내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원태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간 지분과 관련한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분 상속을 놓고 내홍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했고, 한진그룹 언론 담당 부서 역시 "서류 작업이 늦어져 공정위에 자료 제출이 늦어지고 있고 경영권 분쟁 등과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 법조계 인사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조원태 회장에게 지분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방향으로 논의돼 왔는데 지분이 아닌 다른 재산을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에게 어떻게 배분할지를 놓고 합의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견 일치가 지연되는 이유에는 조양호 전 회장의 한진칼 지분 상속에 필요한 막대한 상속세 부담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 사정에 밝은 금융권 관계자는 "조양호 전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상속받는 데 필요한 돈이 현재 지분가치로 단순 계산해도 2000억원에 달한다"며 "상속받는 입장에선 상속세를 낼 순 있지만 향후 20년 동안은 빚에 허덕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상속을 마무리할 기간이 조 전 회장 사망 후 6개월이라 굳이 무리해서 의견서를 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양호 전 회장의 상속세 신고기한은 10월 3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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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격하게 오른 한진칼 주가도 한진그룹 일가에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1만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지난달 4만원을 넘기도 했다. KCGI가 경영권 분쟁에 나서면서 급등한 것이다. KCGI의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지난해 말 12.68%에서 현재 14.84%까지 늘어났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2%가량을 들고 있는 정석인하학원 등 공익법인을 통해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지배구조 판을 새로 짤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조양호 전 회장 지분을 총수 일가 영향력이 미치는 공익법인에 맡겨두는 방식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익법인은 특정 기업 총주식의 5%, 성실공익법인 10%까지 보유하는 것은 '기부'로 보고 면세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공익법인도 동일인이 될 수 있지만 공익법인을 실제로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연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 발표 기한인 이달 15일까지 한진 측에 차기 동일인 변경 신청서와 관련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독려하되 한진 측이 기한 내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직권으로 동일인을 지정할 예정이다.

한진그룹의 기한 내 자료 제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공정위는 사실상 8일부터 공정위 자체 판단에 따른 한진그룹의 새 동일인을 검토하는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공정거래법에 따른 지정 자료 제출 요청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진 측의 자료 제출 연기에 따른 형사고발 대상이 이명희 전 이사장, 조원태 회장,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 중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공정위 측은 "현재 검토 중인 단계"라고 답했다.

[한예경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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