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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탄도미사일 여부 말흐리는 軍…그 이유는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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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조선인민군 전연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10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시스


지난 4일과 9일 북한이 동해상을 향해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올린 것을 두고 국내에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의하면,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단거리 미사일은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사거리 300~500㎞)과 매우 유사하다. 사진을 확인한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탄도미사일로 분류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도 8일(현지시간) 미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 소위 예산안 청문회에서 “(발사 당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이 전화해 ‘북한이 지금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탄도미사일이라는 용어 사용에 신중한 모습이다. “한미 정보당국의 정확한 탄종과 제원에 대한 분석은 좀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9일 북한이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발사체를 쏘아올렸을 때도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라는 표현을 썼다가 10일 ‘단거리 미사일’로 정정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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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공개한 훈련 모습으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발사체와 탄도미사일은 하늘과 땅 차이

정부와 군이 발사체라는 용어를 앞세우는 것은 탄도미사일과 발사체라는 개념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언뜻 보면 발사체와 탄도미사일이라는 용어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막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탄도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발사체라는 것은 일정한 플랫폼에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통칭한다. 유도기능이 장착되어 있지 않아도 이같은 특성을 갖고 있으면, 발사체에 포함될 수 있다. 대구경 자주포와 방사포, 대함미사일, 전투기 탑재 로켓탄과 공대공 및 공대지 미사일, 지대공 미사일, 탄도미사일 등 북한이 운용중인 중화기와 대량살상무기(WMD) 대부분이 포함된다. 위협을 체감하기 어려운 용어다. 미사일 역시 공격, 방어용 미사일이 혼재되어 있는 개념이다.

반면 탄도미사일은 성격이 다르다. 탄도미사일은 탑재된 탄두를 적 지상표적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목표인 무기다. 탄두를 탄도미사일에 결합해 연료를 주입하고 발사대에 세운 뒤, 발사버튼을 누르면 엔진이 점화되면서 솟아오른다. 정점고도에 가까워지면 탄두를 분리하면서 속도와 자세를 제어한다. 이후 재돌입 단계에서 지상으로 낙하하며 표적을 타격한다. “탄도미사일은 100% 공격용 무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핵보유국이 탄도미사일을 운용하게 되면, 탄도미사일은 핵무기 운반체계의 일부가 된다.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 생산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기술이 고도화되어 있다는 의미로서, 지역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핵탄두의 소형화와 경량화가 필수다. 핵탄두 소형화와 경량화의 기준은 1960년대 구소련이 개발한 스커드-B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 1t, 직경 90㎝다. 최소한 1t 미만의 중량과 탄도미사일 외형에 최적화된 모양 및 구조, 고성능 고폭장약과 중성자 발생장치, 정밀 기폭장치를 갖춘 핵탄두를 사거리 1000㎞ 이상의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면, 제한적이나마 핵억제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수출용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로 제한하는 미사일수출통제체제(MTCR)를 운용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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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공개한 훈련 모습으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北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인정하면?

군은 4일에는 신형 전술유도무기, 9일에는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라고 밝혔지만,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또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탄도미사일로 분류하면, 우리 정부와 군이 탄도미사일이라는 용어 사용을 왜 회피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스칸데르 미사일 탄두중량은 480~700kg으로 50kt짜리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무기다. 일반적인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정점에 도달해 하강하면서도 회피기동을 할 수 있어 패트리엇(PAC-3) 등의 요격시도를 무력화한다. 이 기술은 비행거리 축소를 위해 탄도미사일의 엔진 가동을 중지시키거나 비행궤도를 변경하는 ‘에너지 관리 조종 기법(GEMS)’에서 유래했다. 비행궤도를 변경하면 비행거리 단축 외에도 요격미사일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러시아의 토폴-M ICBM이나 미국의 트라이던트-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최신 탄도미사일에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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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훈련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 외에 240mm 방사포와 신형 자주포로 보이는 무기도 동원됐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이스칸데르와 유사한 무기를 만들어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발사한 것과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당시 위력이 50~60kt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은 소형화된 핵무기를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당 발사체의 개발을 진행해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핵무기 개발에서 중요한 요소는 크기는 작고, 무게는 가벼우며, 위력이 큰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탄도미사일의 기술적 특성이 기종마다 서로 다르므로 이에 대한 최적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북극성 SLBM 이외에는 수백㎞를 비행하는데 필요한 고체연료 로켓 엔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기술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져야 한다.

500~600㎏ 무게의 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중국, 인도와 유사한 위력의 핵탄두를 요격 시도 회피가 가능한 탄도미사일에 장착해 쏘아올리는 것은 북한 전술핵능력의 향상을 의미한다. 이는 지금까지 진행됐던 북한 비핵화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 우리 정부와 군이 탄도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쓰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이달 초에 발사한 발사체를 탄도미사일이라고 주장할 이유는 크지 않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한미 양국이 연합 군사훈련을 대규모로 진행할 명분만 주는 셈이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카드’를 하나 더 확보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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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 위원장이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고, 한미 연합훈련을 완전히 중단시켜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북한으로서는 굳이 무력시위 효과를 키울 필요가 없다. 자신들의 미사일 능력만 보여줘도 효과는 충분하다.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대신, 누가 봐도 탄도미사일처럼 보이는 사진을 공개해 간접적으로 한미 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로키(low-key)를 유지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남북 관계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필수다. 팩트체크가 제대로 이뤄져야 국가적 차원의 전략 수립과 이행이 올바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발사체’ ‘단거리 미사일’이라는 용어로 모호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면, 북한의 저강도 도발은 계속될 것이다. 국민들의 대북 인식은 악화되고, 안보 불안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높아질 수 있다.

정부와 군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알릴 것은 알리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군이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군대가 됐다”는 비판을 군이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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