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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끝까지 읽도록 쉽게 번역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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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서양 고전 번역자 천병희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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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최근 낸 <플라톤 전집 7권>(숲)에는 ‘알키비아데스 1·2’ 등 위작 가능성이 큰 플라톤 대화편들과 서한집이 실렸다. 그는 이 책으로 2011년부터 힘을 쏟아온 플라톤 전집 번역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양 사상의 큰 봉우리인 플라톤 대화 34편은 물론 위작으로 간주된 저술까지 모두 한국어로 옮겼다. 한국 철학계가 오래 간직해 온 플라톤 전집 번역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만 여든의 독문학자가 이뤄낸 것이다. 저자를 10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1972년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와 플라톤 <국가>를 공동 번역한 이래 50권 이상의 그리스·로마 원전 번역서를 냈다. 문학에서 역사, 철학 순으로 번역 행로를 밟았다. 호머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헤로도토스 <역사>,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정치학> 등 서양 고전의 정수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독자들과 만났다.

플라톤 저술 번역은 단국대 독문학과 교수를 퇴임하고 7년이 지난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2012년 전집 1권(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편)이 나왔고 이듬해 플라톤 주저인 <국가> 번역본이 나왔다. “처음엔 대화편 가운데 절반 정도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저인 <국가>와 <법률> 번역을 마치고 나니 마저 해도 되겠다는 욕심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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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을 넘어서일까, 천 교수는 여유로워 보였다. 후속 번역 작업을 궁금해하자 “계획은 없다. 쉬면서 생각하겠다”고 받았다. 플라톤에 필적하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번역 구상에 관해 묻자 “후배들이 해야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꼭 번역이 되길 바라는 그리스·로마 원전 텍스트를 묻는 질문에는 “(로마 시대 저술가) 키케로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키케로는 전집이 나와야 한다”고 답했다.

그의 번역 작업이 우리 학계는 물론 출판계를 뒷받침하는 튼실한 토대라는 데 토를 달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56년 서울대 독문학과에 들어간 그는 어떻게 고전 번역에 인생을 걸었을까? “2학년 때 장익봉 교수의 플라톤 <향연> 수업을 들었죠. 그리스어 원전으로 했어요. 그때 플라톤을 처음 알게 되었죠. <향연>에 매력을 느껴 직접 번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196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도 학위보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힘을 쏟았단다. 5년 유학 기간에 그리스어와 라틴어 검정 시험도 통과했다.

그를 독문학으로 이끈 이는 부산고 시절 독일어 교사인 김석환 선생이다. “고2 때 처음 독일어를 배웠어요. 성실하고 너무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아 2학년 겨울방학 때는 하루에 백 단어씩 한 달 동안 독일어 3천 단어를 외웠죠. 도쿄대 상과를 다닌 선생님은 포켓용 독일어 사전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시죠.”

‘독보적 원전 번역자 천병희’를 해명하려면 이 사람을 빼놓으면 안 될 듯하다.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천 교수는 유학 시절 방북한 게 빌미가 되어 3년 2개월 옥고를 치렀다. 이른바 ‘동백림사건’(1967년)에 연루된 것이다. 출소 뒤에도 10년 자격 정지에 묶여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았다. “내가 유학을 하던 60년대 초에는 방북이 큰 문제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유학 가기 전에 그런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죠. 동백림사건 뒤에야 유학생 대상 교육이 시작되었죠. 이 사건으로 30명 이상이 재판을 받았지만 간첩죄로 유죄를 받은 이는 한 명도 없었죠.”

1981년 자격 정지가 풀려 단국대 교수로 임용될 때까지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위안이 된 것은 그리스·로마 원전이다. “1966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서울대 독어교육과에서 3개월 강의를 하고 동백림사건이 터졌죠. 자격 정지 10년 동안 번역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옛 휘문출판사가 기획한 세계의 대사상 1권(플라톤 <국가>)을 박종현 교수와 함께 1982년에 낸 게 저의 첫 원전 번역이죠. 박 교수가 번역 기한을 맞추지 못해 후반부 번역을 저에게 부탁했어요. 그 뒤로 <시학> <오이디푸스왕>을 냈어요. <일리아스>는 70년대 말에 번역을 시작해 82년에 종로서적에서 나왔죠. <일리아스>의 국내 첫 원전 번역입니다. 동백림사건이 없었다면 독문학 교수로 살았을 겁니다. 지금과 같이 원전 번역을 하지는 못했겠죠.”

최근 위작·서한집 포함 7권 내며
국내 첫 플라톤 전집 완역 ‘위업’
지난 8년간 전집 번역 ‘혼신의 힘’


그리스·로마 원전 번역 50여권
“대학 2학년 때 플라톤 ‘향연’ 수업
그리스어로 들으며 번역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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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 번역의 특징은 가독성이다. 쉽게 읽히는 책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사람들이 읽지 않는 것은 번역이 어려워 따라가지 못해서란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또 한두 페이지만 읽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번역하고 싶었죠. 요즘 영어로 나온 원전 번역본들을 보더라도 문장이 간결하고 좋아요. 너무 장황해 이해가 어려우면 의역을 하고요. 배우려고 노력했죠.”

번역의 질은 한국어 구사력이 좌우한다고도 한다. 한국어 공부에 관해 묻자 “따로 없어요. 그저 국어사전을 본다”고만 했다. “가독성 있는 번역은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교정을 제의하면 많이 따라가는 편입니다.”

그의 책은 대부분 출판사 숲(대표 강규순)에서 나온다. “강 대표는 내가 쓴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 출판사, 2002) 편집자이기도 하죠. 그때 너무 깐깐하게 주문을 해 불쾌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책을 보니 마음에 들었어요. (천 교수 개인 저술은 박사 논문 <횔덜린의 핀다로스 수용에 관한 연구>와 <그리스 비극의 이해> 두 권이다) 그 뒤로는 강 대표한테 원고를 맡깁니다. 지금도 (강 대표가) 교정을 보고 또 보고 그럽니다.” 천 교수의 칭찬을 전해 들은 강 대표는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번역 중 어색한 표현은 제가 적극 말씀을 드리는 편입니다. 제가 출판사를 나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천 교수가 단국대로 직접 불러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아폴로도로스 지음, 2004) 번역 원고를 주셨어요. 인물 사전처럼 빽빽한 글이었는데 제가 최대한 예쁘게 편집했어요. 그 뒤로 천 교수가 <일리아스>처럼 계약이 만료된 번역 원고를 계속 주셨죠.”

강 대표는 천 교수의 책 가운데 <일리아스>가 가장 많이 나갔다고 했다. “5만권 이상 팔렸어요. 지금도 매년 1쇄나 2쇄씩 찍어요. <오디세이아> <역사> <정치학>도 많아 나갑니다. 반면 2쇄를 찍지 못한 책도 절반 정도 됩니다.” 그는 “출판사로 천 교수의 후속 번역물을 묻는 전화도 가끔 걸려 온다”며 “천 교수 팬이 꽤 된다”고 했다. “요즘은 독서모임을 하면서 단체 구매를 문의하는 분들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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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 사상을 전공한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85)도 현재 플라톤 전집 완성이란 목표를 향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천 교수는 박 교수의 번역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철저하게 직역하시는 분이죠. 어순까지 지키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번역에 매우 많은 노력을 들이시는 분입니다.”

플라톤 작품의 매력은 뭘까? “아무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특유의 표현이 굉장해요. 어렵지만 생동감이 있고 가슴에 와 닿고 고답적이지도 않죠. 대화체라는 것도 감명 깊어요.” 플라톤 대화편 가운데 최고는 역시 대학 2학년 때 만난 <향연>이란다. “아가톤이라는 친구가 비극경연 상을 받은 걸 기념하는 잔치에 여러 친구가 모여 에로스가 뭔가를 두고 각자 이야기하죠. 매우 허심탄회하게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특히 좋게 느껴졌어요.”

플라톤 사유에 대한 반응은 진폭이 크다. 전체주의 사상의 원조란 평가도 있고 변혁적 사유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철학자 왕’ ‘민중 정치에 대한 반감’ ‘허위를 깨부수는 철저한 진리 추구 태도’와 같은 플라톤 생각을 두고 각기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플라톤 정치철학은 서양 철학적 담론의 출발점입니다. 싫어하는 분들은 극력 반대하고 또 그 철학에 반한 사람들은 플라톤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하죠. 실제 플라톤 철학 중엔 비민주적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죠.” ‘천병희식 플라톤 독법’이 뭐냐는 물음에는 말을 아꼈다. “더 공부해야죠. 그동안 텍스트를 정확히 우리말로 옮기는 데 신경을 써왔죠. 앞으로도 고칠 부분이 있으면 더 고칠 겁니다.”

플라톤이 환생한다면 한국 사회에 어떤 가르침을 줄 것 같으냐고 물었다. “플라톤은 물질 만능주의에 비판적이었어요. 아테네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긴 정치인 페리클레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어요. 그가 시민의 영혼을 돌보는 일보다 물질적 부 추구에 치중했다는 이유에서죠. 지금 정치인들도 정권 연장을 위해 물질적 부만 강조합니다. 수사학도 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어요. 플라톤의 말처럼 혼을 돌보는 게 훌륭한 삶에 이르는 길입니다. 지난 세월 산업화나 민주화 측면에서 많이 나아졌지만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혼을 돌보는 일’이 구체적으로 뭔지 물었다. “플라톤은 개인 행복보다 공동체의 보존을 더 중요하게 봤어요. 수호자, 전사, 농민으로 계급을 나눈 것도 이 때문이죠. 플라톤은 수호자는 50살이 될 때까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교과 과정도 구체적으로 정해줍니다. 50살이 넘어야 통치자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만큼 교육을 강조했죠. 우리도 입시 공부 이런 거 말고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고 문학 작품도 읽히고 철학사의 흐름도 알게 해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직업 교육에만 치중하지 말고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원전 텍스트는 뭘까? “<일리아스>입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 사상가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이기도 해요. 대학 2학년 겨울방학 때 한 줄씩 원전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일리아스>는 그리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인의 자의식이 잘 나타나 있어요. (등장인물들이) 요즘처럼 욕도 하지 않아요.” <일리아스> 번역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전과 번역의 행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인용을 위해선 맞추는 게 좋거든요. 반복되는 표현을 일관성 있게 옮기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죠. 너무 시적으로 번역하면 그 분위기를 계속 끌고 가기 힘들어 평범하면서 뜻이 잘 통하는 문장으로 번역했어요.”

번역은 오전 10시에서 12시 30분까지 그리고 오후 3시에서 5시 30분까지 매일 5시간가량 주말도 쉬지 않고 해왔단다.

그가 정년 퇴직 뒤로 생각했던 그리스 원전 번역을 5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나선 데는 시력 약화가 영향을 미쳤다. 지금 눈 건강을 묻자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스 여행은 얼마나 자주 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66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한 번 했고, 2010년 가족들과 함께 갔어요. 유학 전에 결혼한 아내는 제가 독일 유학을 할 때 한국에 있었어요.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커요.”

고전 번역 지원을 위한 번역청 설립 목소리도 나온다고 하자 이런 말을 했다. “제 책 가운데 <신들의 계보>(헤시오도스) 등 3권이 번역 지원을 받았어요. 지금 팔릴 만한 원전 번역서는 거의 다 나왔어요. 출판사 입장에서 책이 팔릴지 안 팔릴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출판을 하기 쉽지 않아요. 국가에서 원전 번역 출판 지원을 늘렸으면 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고전 읽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전을 두고 모든 사상의 뿌리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그리스 고전은 서양 사상의 뿌리이죠. 여기에 접근해야 그 이후 서양에서 일어난 사상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동양에서 사서삼경이 아닌 지엽적인 책을 읽고 동양 사상을 알 수 없는 것처럼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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