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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작은 성과마저도 많은 사람들의 노고 위에서 만들어진다
<연금술사>의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산문집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100여 편의 산문 중에, 누구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산에 오르는 11가지 방법"이라는 글이 눈에 띠었다. 그 11가지의 방법 중 하나의 방법이 무심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 방법은 '먼저 간 사람에게 배우라'였다.
'아무리 독창적인 꿈을 꾸었던 사람일지라도, 먼저 그 꿈을 꾼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산을 오르는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는 지적은 새삼 잊고 지냈던 그 무엇을 떠올리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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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타인의 도움 안에서 나의 도보 여행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알지 못함'의 대상은 내 도보 여행의 타인이자, 도반이며, 또 안내자이자, 길 위의 사부였던 여러 도보여행 리딩 대장들의 봉사의 마음과 수고였다.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길을 애써 발굴하고, 또 답사한 후에 보수 한 푼 없이 그 길을 인도하는 그분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나의 적지 않은 도보 여행과 또 여러 편의 답사기가 존재할 수 있었음에도 그걸 몰랐던 것이다. 누군가의 작은 성과마저도 많은 사람들의 노고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그 평범한 사실에 눈감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길 위에서 기꺼이 땀을 흘리시며 길을 열어주신 도보 여행의 안내자인 여러 대장들의 노고와 열정에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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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사롭던 어느 날에도, 한없이 열정적이고 진득하셨던 어느 대장의 꽁무니를 쫓아 여러 곳의 길을 걸었었다. 그 길 중 하나가 태안 해변길 중 하나인 <바라길>.
태안해안국립공원에는 7개의 해변길이 있다. 1코스 <바라길>(신두리~학암포, 12㎞), 2코스 <소원길>(신두리~만리포, 22㎞), 3코스 <파도길>(만리포~파도리, 9㎞), 4코스 <솔모랫길>(몽산포~드르니항, 16㎞), 5코스 <노을길>(백사장항~꽃지해변, 12㎞), 6코스 <샛별길>(꽃지해변~황포항, 13㎞), 7코스 <바람길>(황포항~영목항, 16㎞)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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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을 걷다
그 중 <바라길>은 '신두리 해안사구(薪斗里海岸砂丘)'에서 시작된다.
사구는 모래 언덕이다. 그중 해안사구는 해류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파도에 밀려 육지로 올라온 뒤, 다시 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 모양의 지형을 말한다. 1만 5천년에 걸쳐 형성됐다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 해안사구에 있는 모든 지형을 관찰할 수 있으며, 해변을 따라 늘어선 그 길이는 무려 3.4㎞. 그리고 해안선에서 육지까지의 폭은 긴 곳은 1.3㎞에 이른다고 한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두리 사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구로, 그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돼 보호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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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호수의 물결이 무심한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가듯, 모래도 바람의 방향을 따라 사르락대는 소리와 함께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그 언덕에서 아래로 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그저 하릴없이, 동무조차 없어 홀로 놀아야 하는 아이가 모래를 부비며 놀던 그 모습처럼, 신두리의 모래 언덕도 모래를 밀었다가 또 아래로 쏟았다가, 어느 순간엔 바람결에 모래를 던져 흩어놓으며 저 혼자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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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은 노래했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었다. /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 오르탕스 블루)
어쩌면 시인의 혜안이 아니라도 사막은 사막이라서 그저 막막하다. 막막하니 외로운 것이다. 그렇게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 또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두리사구에서는 모래밭을 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나온 제 발자국을 볼 수도 없다. 천연기념물인 탓에 그저 눈으로만 보고, 또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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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망망한 풍경 앞에 서면 그냥 그대로 머물러 물끄러미 바라보고픈 욕망이 생긴다. 땅 끝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산 정상에서 가뭇하게 흘러가는 산줄기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다가 문득 내면에서 울리는 어떤 소리를 감지해내고, 그 소리가 궁금해진 까닭이다. 갑자기 무언가 툭 터지며 쏟아지는 거친 물살 같은 마음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가끔은 어느 풍경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뜨이고, 특별한 무언가를 만나기도 하는 법이니,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을 도리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길은, 또 길 위의 도반들은 좀체 머무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갈 길이 바쁜 까닭이다. 게다가 길조차 좁으니 그저 밀려갈 따름이다. 장강의 뒷물에 하는 수없이 밀려가는 앞물처럼 일체의 저항은 용납되질 않는다. 게다가 그날은 주말이었으니, 어쩌면 머무름은 사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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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를 에둘러 흐르는 길은 억새밭을 지난다.
사구의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억새들에게서 더 이상 자신의 땅을 빼앗길 수 없다는 굳은 결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계절 탓이었을까. 힘을 잃은 억새가 딛고 선 땅은 이미 모래에게 점령 당한지 오래라, 그들의 투쟁심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의 땅을 보존하게 할지…. 의구심만 가득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해 본다.
길은 곰솔 숲으로 이어진다.
사구에 밀려나는 억새들의 수난이야 남의 일이라는 듯 곰솔의 무리는 애써 태연하다. 아니 초월해 있는 듯하다. 오랜 세월 짠내 가득한 바닷바람을 맞고도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나 자기만의 영토를 구축했으니, 나름 그들만의 자부심이야 오죽할 것인가. 실제 그들의 자부심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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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언(默言)은 선한 것을 위하여 자리를 비우는 내성(內省)의 고요함이며 겸손함
곰솔의 다른 이름은 해송(海松)이다. 자라는 곳이 바닷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살기를 거부하는, 심하게는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자리인 모래밭이면서 소금기 가득한 그 땅에서 그들은 산다. 그냥 버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숫제 수평선이 아득한 너른 풍광을 오히려 즐기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으니, 사구의 팽창이야 그리 겁낼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곰솔은 소나무이되, 소나무가 아니다. 소나무 줄기가 붉은 데 반해 해송의 줄기는 흑갈색이다. 그래서 줄기가 검다 하여 흑송(黑松)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말로 풀면 '검은 솔' 또는 '검솔'이 되는데, 이 '검솔'이라는 이름에서 곰솔이란 이름의 유래를 추정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검솔'이 '곰솔'로 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 그것이다. (<우리 나무의 세계>, 박상진)
이른 봄볕이 따가운 날에 곰솔 숲으로 들어선 길은 한결 여유로워진다. 나무 덱으로 만든 길은 서두름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곰솔의 새싹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취해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피톤치드였던가. 왠지 몸도 마음도 깨어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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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운 것은 낯선 풍광과 오랜만의 나들이가 주는 들뜸 때문이었는지 일부 여행객들의 흥겨움이 소음으로 다가올 때가 더러 있다는 점이다. 숲에서는, 그리고 길 위에서는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며 그저 말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여유도 필요한 법이건만, 소풍의 의미가 큰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하고픈 말을 참는 일이 힘들었나 보다.
동행과의 즐거운 대화야 더없이 좋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길 위에서는, 게다가 도보여행 중이라면 조금은 목소리를 낮춰도 좋을 것이다. 한편으론 말보다 침묵 속에 스스로를 가만히 놓아둠으로써 자연의 소리를 듣고, 또 사색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대면하는 여유나 잠깐의 틈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시간을 내어 집을 나서고, 그렇게 길 위에 있는 이유가 그저 먹고 마시고 떠들며 '노는' 것으로만 정의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물론 일상에서 벗어나 무심히 시간을 즐기고픈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래도 가끔은 목소리를 낮추고 나 아닌 다른 대상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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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은 '시냇물이 담(潭)을 이루어 멈출 때 문득 소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묵언(默言)은 선한 것을 위하여 자리를 비우는 내성(內省)의 고요함이며 겸손함'이라고 했었다. (내성(內省)=자기 자신을 돌이켜봄)
사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묵언(默言)을 통한 수행(修行)이라는 거창한(?) 뜻을 세워 행하는 것이야 쉬운 일이겠느냐마는, 그럼에도 가끔은 말수를 줄임으로써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묵언은 또 침묵은 충동에, 감정에, 유혹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억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대나무청처럼 가볍고 여린 존재가 우리네 인간인지라, 그래서 더욱 침묵은 필요해 보인다. 그렇게 자신을 포함하는 대상을 정확히 바라보고 차분히 응시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특히 길 위에서는 더욱 침묵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저마다 걷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어떤 이는 도보여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도 하고, 사람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먼 길을 달려와 그 곳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서 침묵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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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곰솔 숲을 벗어난 길은 다시 억새숲으로 이어진다.
'작은 별똥재'라는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설명에 따르면, 오래 전 신두리 사구에 운석이 떨어진 적이 있었고, 이곳이 그곳이란다. 별똥재는 말 그대로 별똥의 재라는데, 유성의 파편을 말하는 것일 게다. 게다가 이정표는 친절하게도 예로부터 운석이 떨어진 땅에는 좋은 기운이 머문다면서, 소원 빌기를 권한다. 글쎄, 부족한 건 많지만 뭘 빌어야 하나. 이마저도 숙제다. 나이가 들었다는 뜻일 게다.
소원이란 단어를 읊조리자, 얼마 전 TV에서 본 어느 장애우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얼굴과 목 주변에 수술조차 불가능하다는 커다란 혹을 달고 사는 그는 오랫동안 죽음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택배 배송 관련 일을 하는 그가 그 위험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이유는 '내일 또 하고픈 즐거운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죽을 수 없었다고….
외모 때문에 받았을 나름의 상처가 있었을 법도 한데, 그는 그저 싱글벙글 웃는다. 웃는 얼굴로 '내일 즐겨야 할 즐거운 일 때문에' 죽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미소 띤 얼굴로... 그래서일까. 지금 이 순간 그를 떠올리면서 그의 상처보다는 환한 미소 띤 얼굴만이 기억에 오롯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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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더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희망들에 부대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소원이나 희망이란 단어 안에 내포된 당의정 같은 달콤하면서도 막연한 꿈에 기대어 일상을 방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살아 있음에 대한 의미'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것 말고, 지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그럼에도 바람 하나가 있다면, 의병 제대를 한 아들놈이 의병 제대의 이유가 되었던 아픔으로, 처음 떠난 먼 여행길이 고난의 행군이 되고 있다니, 아비된 마음으로 그놈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저 여행의 안전한 완주와 무사귀환이 당장의 바람이면서, 또 기도라면 기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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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펼쳐진 억새밭 사이로 사람들이 오고 간다. 억새밭을 넘어서자, 아!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 까마득하다. 바다는 저 멀리로 밀려나 그저 아득히 먼 곳에서 백사장을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바다는 스스로 품고 있던 모래를 땅 위로 밀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구한 역사가 오늘 신두리사구의 모습이다.
사구와 억새밭을 벗어난 길은 학암포로 나아간다. 산과 바다를 에둘러 돌아가는 길이다. <바라길>의 끝은 아직도 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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