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이 돌연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 중국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600억 달러(약 71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5~25%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이는 10일 미국이 중국산 상품 2000억 달러어치에 대한 관세를 기존 10%에서 25%로 올린 데 대한 보복 조치에 해당한다.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뒤 강경 대응 기조를 통해 양국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양상이다.
중국이 관세를 매기는 대상은 땅콩, 설탕, 시금치, 닭고기 등 농축산물과 배터리 등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 승리의 핵심 지지 기반인 중서부 팜 벨트(농업지대)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농업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92억 달러 상당의 농산물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이 때문에 미국 농민들은 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로 꼽히기도 했다.
앞서 미국은 13일부터 모든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리는 ‘3단계 관세’ 부과 절차를 공식 시작한다고 밝혔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공청회와 60일 의견 수렴 기간 등이 있어 추가 관세를 이행하는 과정은 여러 달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중국의 관세 부과 발표 직전 중국이 보복에 나서면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관세가 부과된 기업들은 중국을 떠나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갈 것”이라며 “이것이 중국이 협상 타결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다. 중국에서 사업하려는 이들은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중 무역협상 결렬 이후 중국 관영 매체들은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일제히 비난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13일 “중국은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관영 환추시보는 원칙을 지키면서 선제공격 대신 상대방의 공격을 와해시키는 방식의 중국 대응은 태극권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중 무역갈등을 해결할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 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커들로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6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가능성이 꽤 높다. 중국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고 전했다. 양측은 두 정상의 다음 달 회동 전 먼저 베이징에서 고위급 협상을 재개해 합의를 재차 시도할 것으로 보였지만 중국의 강경 대응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 CNBC에 따르면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투자자 노트에서 “양국이 올해 말쯤 합의에 이를 것”이라면서도 “갈등이 추가로 고조될 위험도 있고 관세 부담이 미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중국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일본 국내 경기가 정점을 지나 침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내각부는 3월 경기동향지수를 기초로 한 경기 기조판단을 후퇴기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악화’로 낮췄다고 아사히신문이 13일 보도했다. 2월까지만 해도 ‘하방 국면 변화’였다. 내각부가 ‘악화’로 판단한 것은 제2차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13년 1월 이후 6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중국 경기 둔화와 일본 국내 기업의 생산과 출하 정체가 영향을 미쳤다고 아사히신문은 분석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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