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제97차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퇴진 촉구 발언 중 손학규 대표가 머리를 만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나가라” vs “못 나간다”, 오신환 원내대표 선출 후 첫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는 겉표식만 같을 뿐 ‘남남’이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는 자리였다. 오 원내대표를 비롯해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 등 바른정당(유승민)계 인사들은 쉴새 없이 손학규 대표를 공격했다. 전날 강한 어조로 퇴진 불가를 천명한 손 대표는 직접적인 반응을 자제했다.

17일 바른미래당의 최고위원회의는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누가 참석하느냐도 관전 포인트였던 이날 회의에서는 안철수계인 김수민 청년최고위원을 제외한 모든 최고위원들이 참석했다. 유승민계 최고위원들은 준비라도 했듯이 손 대표를 향해 ‘융단폭격’을 내렸다.

오신환 “孫, 누가 수구보수고 패권주의인가”

먼저 손 대표는 당내 상황 이야기보다는 현 정부 경제 상황을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먼저 오 원내대표는 전날(16일) 손 대표의 기자간담회 발언을 문제 삼았다.

손 대표는 간담회에서 “손학규가 계파 패권주의에 굴복해 퇴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이 수구보수 세력 손에 허망하게 넘어가지 않도록, 제 정치적 명운을 걸고 당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안철수·유승민계의 자유한국당행 시나리오’를 뜻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오 원내대표는 “당대표가 같은 당 동지들을 수구보수로 매도하면서, 원내대표 경선 결과로 확인된 의원들의 총의를 패권주의라고 비난한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누가 도대체 수구보수고 패권주의인가. 패권주의와 수구보수라는 표현에 대해서 사과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비판했다.

하태경 수석최고위원은 자리 배석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회의 시작 전 주승용 최고위원(지명직)이 손 대표 우측에 앉으려 했다. 통상 대표 우측 자리는 수석최고위원의 자리다. 하 최고위원은 주 최고위원에게 “절차를 지켜야 한다”며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하 최고위원은 자신의 발언 전에도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자리 문제를 또 지적했다. 하 최고위원은 최고위 회의장에 배석한 친(親) 손학규 측 임재훈 의원을 두고 “아무리 동료의원이지만 양해 없이 불쑥 들어오는 건 최고위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임 의원은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오신환 원내대표 등 최고위원들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해 착석하던중 하태경 최고위원(왼쪽)이 좌석 배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권은희 “제7공화국은 孫의 꿈, 당원 꿈 아냐”

이준석 최고위원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박 의원은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손 대표가 평화당 의원을 접촉해 ‘유승민을 몰아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발언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를 두고 “해당행위를 넘어서는 아주 중대한 정치적 도의의 져버림”이라며 “손 대표가 박 의원을 향해 법적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은희 최고위원은 손 대표가 평소 주창한 ‘제7공화국’을 주제로 손 대표를 비판했다. 권 최고위원은 “제7공화국은 대표의 꿈이지, 우리 당원들과 지역위원장들의 꿈이 아니다”며 “바른미래당을 통해서 제7공화국을 이루겠다는 꿈을 꿀 때가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면 손 대표가 구원투수로 영입한 지명직 최고위원 두 명 중 하나인 주승용 최고위원은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문병호 최고위원 홀로 손 대표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 대표 본인은 역습보다 방어에 주력했다. 우선 지난 3일 당대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임한 정무직 당직자 13명을 원대복귀키로 했다. 박지원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막말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당 대표가 임명할 수 있는 사무총장, 정책위의장도 일단 임명을 보류키로 했다. 다만 이는 한 박자 쉬어가는 의미지 후퇴를 뜻하지는 않았다. 손 대표는 “어제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며 “이를 통해 승리의 길로 가겠다는 입장이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손 대표와 바른정당계 최고위원 간 전쟁은 이제 조금 포문을 연 것이라는 평가다. 유승민계 최고위원들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손 대표의 당무를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전략이다. 손 대표 역시 당헌당규 속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방어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