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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영상+] 유명 정신과 의사, ‘그루밍 성폭력’ 고소에도 정상 진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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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피해 주장 환자, 정신과 원장 해명 듣고 고소 결심해

원장 김씨, 성폭력 부인 “내가 오히려 능욕당했다” 주장

의협·보건복지부 “한쪽 말만 듣고 면허 취소 결정 못해”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kbOniTxCvHw

‘최도현’이 포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지난 4월29일,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정신과 의사 최도현(가명·44)의 추가 그루밍 성폭력 의혹 때문입니다. 기사에 달린 “최도현 실명을 밝혀라”라는 댓글이 높은 공감수를 받았습니다. 아직 법적 판단이 나지 않아 ‘최도현’의 실명은 밝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도현은 사실 대구에서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 김아무개씨입니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탄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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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윤이 강제추행을 벤치마킹”…김씨 해명 바뀌다

앞서 김씨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는 서지혜(가명·38)씨가 김씨를 피감독자간음죄로 고소했지만 2018년 11월 대구지검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올해 3월, 이에 불복한 서씨가 낸 항고도 대구고검은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는 서씨에 이어 김씨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추가로 보도했습니다. 정하윤(가명·23)씨입니다. 29일 기사에선 정씨가 김씨를 고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해드렸습니다. “법에서 그루밍 성폭력을 인정받기 너무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그런데 결국 정씨도 5월1일, 김씨를 피감독자간음죄로 고소합니다. 정씨는 왜 마음을 바꿨을까요.



“사실 저는 김씨가 ‘성관계는 있었지만 합의된 성관계다'라고 주장할 줄 알았어요. 근데 이거는 너무 예상을 못한 범주인 거에요. 제가 강제추행을 하고 강간을 했다니... 이런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비하려면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김씨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요. 저 말고도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고소를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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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정하윤씨의 피해 상황을 보도한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병원 앞에 자주 가는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정하윤이 갑자기 들이닥쳐 제가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키스했다”며 “능욕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는 서지혜씨의 주장도 반박하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서지혜가 위력을 사용해 김씨를 제압했다는 겁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환자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180도 달라진 주장을 내놓은 셈입니다. 건장한 40대 남성이자 의사가 어떻게 여성 환자에게 위력으로 제압당했는지 궁금해 김씨에게 자세한 내용을 다시 물었습니다.



-서지혜에게 제압당했다고 말했던데.

“병원 앞에 자주 가는 호텔이 있다. 서지혜가 그걸 알고서 간호사나 직원 흉내를 내며 전달할 게 있다는 식으로 방에 들어왔다.”

-대구지검에 따르면 성관계가 총 8차례 있다는데 그때마다 제압당한 건가.

“그렇다. 물론 힘으로 당한 건 아니다. 의사가 몸싸움을 하면 안 되니까. 서지혜가 다음에는 언제 볼래? 이러면서 끝까지 집착해 거절할 수 없었다. 감금당하기도 했다.”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한테 위력을 행사했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을 봐라. 막말로 의사가 갑이냐. 지금 있는 동네에는 한 집 건너 정신과가 있다.”

-왜 거부하지 않았나.

“호텔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서지혜가 스스륵 방에 들어왔다.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더라. 쳐냈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척질 거 같아 그러지 못했다.”

-근데 ‘만나면 먼저 섹스를 하자고 얘기하지 싶습니다'고 피해자에게 트위터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나.

“맞다.”

-메시지를 보낸 직후 서지혜 집 앞으로 찾아간 걸로 알고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치료 종결의 일환으로 한 거였다.”

-두번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정하윤에게도 강제로 당했다고 말했던데.

“맞다. 정하윤이 서지혜를 벤치마킹한 거다.”

-사실이라면 강간 등으로 고소할 계획도 있나.

“환자를 절대 고소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런 일(성관계)이 일어난 것 자체를 치료 실패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지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겨레>에도 서지혜 등을 무고죄로 고소할 예정이라 밝히지 않았나.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성격 상 고소는 못한다. 명예훼손은 지인인 한 변호사가 하도 하자고 해서 한 거다.”



환자였던 서지혜씨와의 성관계에 대해 김씨는 그동안 진술을 계속 바꿔왔습니다. 2018년 3월 있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와의 면담 때 김씨는 “(성관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 환자의 에로틱한 망상(erotic delusion)”이라고 답했습니다. 작년 언론 인터뷰에서도 김씨는 “성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성관계가 없었다”에서 “성관계는 있었다”로 입장을 바꿨고, 결국에는 “(여성 환자의) 위력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는 주장으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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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은 경찰 조사 등으로 밝혀진 것과는 사실관계에서 차이가 납니다. 경찰 조사 내용과 서지혜씨의 주장을 종합하면, 첫 성관계는 김씨가 서씨가 사는 집에 직접 찾아간 뒤 호텔에 서씨를 데려가 이뤄졌습니다. 서씨가 호텔로 무작정 찾아왔다는 김씨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의 ‘모르쇠’…부담은 온전히 피해자에게

그루밍 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김씨는 여전히 하루에 환자 수십 명을 상대로 정상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제명됐지만 의사 면허를 박탈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문제다'라는 정신의학계의 통념과 달리 김씨가 의사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사 면허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에 물어봤습니다. 의료법 제66조는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 보건복지부 장관이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습니다. 다음은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입장입니다.



“진료 행위 중에 강간과 유사 강간을 했으면 자격 정지 12개월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진료 행위가 끝난 뒤 저지른 성폭력 범죄라 보여 관련된 행정 처분 규칙이 없다. 성범죄 저지른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행정처분한다는 법은 없다. 또한 재판 등 법적인 절차가 다 끝나야 행정처분이 가능하다. 3심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한 쪽의 의견만 듣고 행정처분하기는 어렵다. 재판을 받다가 뒤집어지면 다시 처리하기가 곤란해진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과 행정 처분이 내려지는 시기는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면허 박탈 관련 행정처분을 할 수는 있지만 꼭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실무적으로 급하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의료법 66조에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행정 업무하는 사람보다는 대한의사협회가 전문가 아니냐. 그쪽 의견을 많이 수용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통상 의사면허 박탈은 대한의사협회에 있는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한 뒤 결론이 나면 회원 권리를 정지해 보건복지부에 면허를 정지하라는 행정 처분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김씨는 한 유명 연예인의 유서에 거론된 의사를 공개 비판한 사건으로 중앙윤리위원회에서 2017년 말부터 1년 넘게 심의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정하윤이라는 새로운 피해자가 나온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도 1주일이 지난 뒤 중앙윤리위원회 측에 물었습니다. 다음은 대변인의 답변입니다.



“두 번째 피해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을 잘 모른다. 언론보다 소식이 느릴 수 있다. 무조건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건 아니다. 윤리적인 부분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현재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심의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 없다.”



심의 중인 의사 사건에 관해 새로운 성폭력 피해 주장이 나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겁니다. 대변인은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건 아니라면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말도 있듯이 형량이 확실하게 나올 때까지 확정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대구고검은 올해 3월 항고 기각 결정을 내린 뒤 서지혜씨는 법원에 재정신청을 낸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의 설명대로라면, 김씨의 의사 면허 박탈은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뒤 유죄 판단을 내려야 가능합니다. 뒤이어 그루밍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정하윤씨의 김씨에 대한 고소는 아직 경찰 조사 단계입니다. 법적 판결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때까지 정상 진료는 계속되고 서지혜씨나 정하윤씨처럼 추가로 그루밍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환자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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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재 의료법은 의사가 정신질환자나 마약중독자이거나 형법상 허위진단서를 작성하고 업무상비밀누설을 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집행했을 때 의사 면허를 반드시 취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외엔 의사 면허의 취소 사유는 없습니다. 2018년 국회에서 열린 ‘의사의 형사범죄와 면허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심포지움에서 박호균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행 의료법대로라면 의사가 의도적으로 환자를 살해하거나 횡령, 배임, 절도, 강간, 업무상과실치사 등 일반 형사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더라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면허 취소 대상 범죄에 해당돼 박탈되더라도 형 집행이 종료된 뒤에는 1~3년 내에 면허 재교부가 가능합니다. 면허취소가 일시적인 처분에 불과한 겁니다. ‘철밥통'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결국 가장 큰 원인은 의사의 환자에 대한 그루밍 성폭력을 처벌하지 않는 법 자체의 허술함입니다. 관련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의사협회나 보건복지부 등 유관 단체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의사 출신의 정이원 변호사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회적 물의가 대대적으로 빚어지지 않는 이상 의사협회는 잘 안 움직인다”며 “보건복지부 또한 품위 위반이라는 조항 자체가 광범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격 정지를 적극적으로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장정숙 민주평화당 의원 등 10인은 2018년 12월, 의료인이 성범죄를 범해서 공소가 제기된 경우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면허 자격을 정지하고, 재판 결과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게 한다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의사협회의 반발과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 등의 논란으로 법안은 아직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법과 제도의 공백으로 인한 부담은 온전히 피해자가 짊어지게 됩니다. 김씨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서지혜씨는 새롭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씨에게 당한 기억 때문에 다른 정신과 의사도 쉽사리 믿지 못해 진료를 이어가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김씨가 건 명예훼손 소송의 피의자로서 재판도 받아야 합니다. 안팎으로 힘든 싸움을 서씨가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김씨와 싸우는 게 아닙니다. 제 피해를 피해로 인정하지 않는 시스템과 싸우는 중입니다. 제게는 캄캄한 절벽만이 남아있지만 또다른 피해자 정하윤이 다다른 세상은 달랐으면 합니다. 달라야만 하고요.”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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