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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다른 삶]친했던 이웃들이 돌아가신 해, 기다리던 딸이 태어났다…2016년 이후 ‘오늘’이 더 소중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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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원철의 ‘알프스 베베 레나’

2016년은 우리 부부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생명인 레나가 태어난 해이면서, 전에 없이 많은 지인들이 유명을 달리한 해이기도 했다. 파리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 중 두 분이나 아직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떴고, 이웃의 노인 두 분도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 생명의 탄생과 순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였던 것이다.

우리 바로 윗집에 살던 자크 아저씨는 70대 중반이었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항상 활기차고 정정했다. 주말 오후 늦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려 나가 보면, 산에서 따온 은방울꽃이나 귀한 버섯을 안겨 주고 가시곤 했다. 어느 일요일에 동네 입구에서 아저씨를 마주쳤는데, 평소답지 않게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괜찮냐고 물었더니, 산에 버섯 따러 갔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급히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조심하시라 당부드렸는데 바로 그 주 수요일에 돌아가신 것이다. 부인인 타오 아주머니는 동네에 많지 않은 아시아(베트남)계라 우리 부부와도 가깝게 지낸 편이었는데, 아저씨가 돌아가신 이후 안 그래도 슬픈 와중에 전처 소생 자식들과의 유산 분할 문제까지 겹치는 바람에 진이 다 빠져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그래봐야 살던 작은 집의 소유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였지만, 합리적이고 냉정한 프랑스인들의 일처리가 아주머니에게는 매몰차게 여겨졌던 것이다.

경향신문

눈 덮인 산과 오래된 교회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동네 묘역의 평화로운 풍경. 필자가 저녁식사 후 딸 레나와 종종 산책하는 코스다. 곽원철 제공


또 다른 이웃인 70대 중후반의 모리스 아저씨는 큰 키에 날카로운 인상으로 항상 동네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면서도 쓰레기 분리수거 등등으로 잔소리를 많이 하셔서 우리 부부는 ‘드라큘라 아저씨’로 칭하곤 했다. 일종의 동네 군기반장 같은 역할이라 우리는 속으로 ‘저 아저씨는 분명 우파 지지자일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지방선거에서 좌파 사회당 소속 시장(그래봐야 인구 1만명도 안되는 조그만 마을 시장이지만)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다니셨던 의외의 면모가 있었다. 모리스 아저씨는 레나가 태어난 직후 우리 부부가 아직 병원에 머물고 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식에도 가보지 못해 죄송했다. 자크 아저씨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에게 제일 먼저 알려준 분이 모리스 아저씨였는데 말이다. 부인 소피 아주머니는 작은 키에 항상 방긋 웃는 인상이어서 큰 키에 무서운 표정인 모리스 아저씨와 재밌는 대비를 이루곤 했다.

실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것은 소피 아주머니였다. 아내가 전해주기를, 모리스 아저씨는 날씨가 좋을 때면 아주머니를 베란다로 데리고 나와 의자에 앉히고는 정성스레 머리를 빗겨 주곤 했다고 한다. 한없이 푸른 하늘 아래 눈 덮인 알프스 산자락을 바라보며, 평생을 함께한 사랑하는 남편이 머리를 빗겨 줄 때 아주머니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그리고 그가 급작스레 먼저 떠나 버렸을 때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로서는 차마 가늠할 길이 없었다. 이후 그 좋던 미소를 잃고 가끔씩 쓰레기 버릴 때에나 힘없이 집 밖에 나오는 아주머니에게 뭐라 위로할 말이 없었다. 뭉텅 빠져버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역시 부부는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아내와 한마음으로 “우리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서로 아껴주며 건강하게 살다가 한날한시에 같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자. 그때까지 온 맘 다해 사랑하자”라고, 잠든 레나를 내려다보며 소박한 다짐을 했다.

남은 가족들은 힘들었겠지만, 두 아저씨를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부러운 결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분 다 생의 거의 마지막 날까지, 젊은이들 부럽지 않게 건강한 몸으로 자신들이 즐겨 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활동에 몰두하다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사실 프랑스라고 해서 모든 노인이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건강하게 살다 미련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지인인 필립 아저씨는 젊은 시절에는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비즈니스맨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조기 퇴직 후 30년 가까이 연금생활자로 지내다 돌아가셨다. 다행히 프랑스 경제가 아직 활황의 끝자락이던 (프랑스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70년대 오일 쇼크 직전까지 활황을 구가해, 이 시기를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른다) 1970~80년대에 직장생활을 했던지라 연금은 부족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으나 내가 처음 프랑스에 정착한 10여년 전부터도 이미 거동이 불편하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사실 그 정도면 시설 좋고 깨끗한 노인 요양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도 좋으련만, 한사코 집을 떠나기를 거부하고 고집을 피워 가족들을 힘들게 하셨다. 필립 아저씨의 가족들과 알고 지낸 10년 동안 한 번도 이분이 일어서서 걷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돌아가시기 직전 수년 동안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연명 치료에 의존해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다 지난해 뼈와 가죽만 남은 몰골로 마지막 숨을 내쉬고는 생을 마감했다. 고인과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한 가족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솔직히 저렇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험이나 연금을 비롯한 노후 자산 관리에서 사용하는 개념 중에 ‘Longevity risk’가 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장수위험’인데, 오래 사는 것을 인간의 오복 중에서도 으뜸으로 쳤던 유교식 사고방식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일찍 죽을 위험이 아니라 오래 살 위험이라니, 이런 역설적인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고리타분한 시절의 우스개 중에는, 나이 들어 소외감을 느끼는 노인들이 “늙으면 죽어야지” 하고 푸념하는 것이,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고 하는 것, 처녀·총각이 “시집·장가 안 가요”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 3대 거짓말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뒤의 두 가지는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비혼 인구가 급증하는 요즈음의 세태로는 결코 거짓말이라 할 수 없겠으나, 존재의 본질에 보다 근접해 있는 첫 번째 ‘거짓말’은 여전히 다른 의미와 무게를 가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하여 경제활동을 멈추고 은퇴 전까지 축적한 자산을 (그것이 현금성 저축이건 부동산이건 자식 농사건) 소진하며 여생을 보내는 상황에서, 예상했던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큰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건강까지 좋지 못해 남은 삶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나락 속에 보내야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도무지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고통까지 안겨야 한다면, 이보다 더한 위험(risk)이 있을까. 이에 비하면 기대보다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은 오히려 축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기대수명(life expectancy)이라는 통계적인 개념 자체가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참으로 기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신적 존재가 아니고서야, 자기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기대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결국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자기 삶의 끝을 향해, 하루하루를 그저 꾸역꾸역 채워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왠지 실존적인 질문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밑천 드러나기 전에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현명하지 싶다.

앞서 유교 문화에서는 (사실 어느 문화권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을 다섯 가지 복의 으뜸으로 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네 가지는 뭘까? 출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건강한 치아가 그중 하나라는 것은 치약 광고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가령 청조 때 편찬된 <통속편(通俗編)>에서 들고 있는 오복의 마지막은 자손중다(子孫衆多), 즉 자손이 많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서민층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반면 오경의 하나로 고전 중의 고전인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서 들고 있는 오복의 마지막은 고종명(考終命), 즉 죽음을 깨끗이 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어떻게 생의 끝을 맞이하느냐의 문제는 수천년 전 동양의 사상에서도 현대 프랑스의 실존철학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하지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고 직장 생활하다 예기치 않게 지구 반대편의 다른 문화권에 정착해 살다보니, 두 나라 간의 문화적·사회적 차이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었다. 과분하게도 귀한 지면을 허락받아 이에 대한 설익은 생각들을 풀어내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근본적인 것에 대한 답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느 지점에서는 맞닿아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근본적인 것 중 가장 근본은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양과 서양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하나로 통한다는 것은, 철학자도 역사학자도 종교인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자 늦깎이 아빠인 나에게조차도 강렬하게 와닿는 통찰이다.

2016년 세상을 하직한 인사들 중에는, 조지 마이클과 데이비드 보위와 프린스도 있지만,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우리 세대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신영복 선생도 있었다. 흑색종으로 투병하다 병세가 악화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한. 그가 스스로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내린 선택이 옳은 것인지를 감히 판단할 자격은 내게, 아니 이생에 남은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다만 2016년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의 삶의 한 자락들을 직간접으로 들여다보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게 2016년은 그런 해였다.

▶필자 곽원철

경향신문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12년 남짓 직장 생활을 했다. 외국계 기업의 국내 사업과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 재벌 대기업 기획실과 스타트업의 프로젝트 팀장 등 다양한 업무를 오가다 2009년에 아무런 기약없이 훌쩍 프랑스로 건너갔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남프랑스의 산악도시 그르노블에서 아내와 늦둥이 어린 딸 레나와 함께 살고 있다.


곽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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