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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그들이 저급할 때 우리는 품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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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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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일베’ 용어를 썼다. 5월11일 대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집회에서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인터뷰한 KBS 송현정 기자가 비난받는 것에 대해 “그 기자가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며 “기자가 대통령에게 좌파독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도 못하냐”고 말했다. 나는 저 ‘달창’이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안 순간 식겁했다. 달창은 스스로를 ‘달빛기사단’이라고 하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그리 많이 알려진 용어도 아니다. 보통의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일베 같은 극우 커뮤니티에서만 한정적으로 쓰인다.

야당 원내대표가 ‘일베’ 욕설



대중적 분노가 폭발하자 뒤늦게 나경원은 사과했다. “문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자를 지칭하는 과정에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모르고 특정 단어를 썼다”고 사과문을 냈다. 사과문이 나온 뒤에도 분노가 잦아들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모르고 썼다면 사리 분별력이 없는 것이고, 모른 척한 것이면 교활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에둘러 말했다.

이른바 ‘달창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이 발언이 한 정당의 원내대표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극우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 통용되는 정치적 욕설과 은어는 정치인 입에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두 세계는 어느 정도 분리돼 있었다. 그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나경원은 ‘달창’이라는 단어를 집회에서 큰 목소리로 말함으로써 어둠의 인터넷 세계에서 만들어진 은어를 모든 국민이 알게 하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규칙을 어긴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결이 이번 사건에 덧씌워진다. <허프포스트코리아>의 나경원 원내대표 기사에는 여성 비하적인 욕설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나 원내대표의 별명을 이용해서 쏟아내는 욕설이었다. ‘달창’에 버금가는 표현이 가득했다. 어쩔 도리 없이 “비속어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공식 댓글을 남겼지만 욕설은 끝없이 달렸다. 일부 댓글은 지워야만 했다.

추락한 정치언어, 정치혐오 양산



정치의 언어들이 바닥으로 추락해간다. 보수 1당 원내대표는 일베 용어를 쓴다. 보수 정치인들은 각자의 소셜미디어에서 도무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게워낸다. 거기에 맞서는 사람들 역시 여과 없는 용어로 분노를 토해낸다. 정치적 언어의 타락은 결국 정치혐오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저급한 언어의 정치는 모든 것을 저급해 보이게 만든다. 거기에 대항하는 방법?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품위를 지키며 대적하는 것이다. 미셸 오바마는 2016년 미국 전당대회에서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고 말했다. 두고두고 회자돼야 마땅한 명연설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말이었다.



*연재를 마치며

그간 <한겨레21>에 칼럼을 연재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신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김도훈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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