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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아버지때 순혈주의로는 혁신 없다"…외부인 영입도 파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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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 젊은총수 시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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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그룹 부회장으로 올 것이라는 얘기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 믿기지 않았죠. 사장급도 아닌 부회장 자리에 외부인이 온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LG그룹 정기인사가 단행되자 그룹 내에서는 "최근 10년을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쏟아져나왔다.

1년 전 회장에 오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그룹 모태인 LG화학 CEO로 미국 3M 출신의 신학철 부회장을 영입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뒤이어 홍범식 베인앤드컴퍼니 대표를 지주사 경영전략팀으로,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인 김형남 부사장을 자동차부품팀장으로 발탁하는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됐다.

40대 초반 젊은 총수의 첫 인사권 행사가 조직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조직 내 '순혈주의'를 깨고 새로운 혁신의 에너지를 불어넣겠다는 의지였다.

과거 총수의 인사권에 담긴 메시지가 '성과 중심·신상필벌' 위주였다면 젊은 총수들은 외부 인재 수혈을 통한 조직 혁신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인사 행보는 더 파격적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북미·중남미를 총괄하는 미주 권역 담당으로 닛산자동차 출신의 호세 무뇨스 사장을 발탁했다. 디자인사업부를 중심으로 영입했던 외국인을 판매사업부로 확대해 그룹 전체에 긴장과 쇄신을 주문한 것이다. 자율주행·커넥티드카 기술 부문에서도 순혈주의를 깨고 최근 KT에서 5세대(5G) 이동통신 전문가로 활약한 윤경림 전 부사장을 현대차 전략기술본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올해 초에는 그룹 차원의 대졸 상·하반기 공개채용 제도를 폐지해 다른 그룹들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장의 기술 수요에 맞춰 적재적소에 인재를 확보하려면 대규모 정기공채보다 상시채용이 기업 인력 운용에 더 적합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룹은 정 수석부회장 판단이 서열을 중시하는 이른바 '공채 기수' 문화를 깨뜨려 프로젝트 단위의 팀 활동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 총수는 조직의 낡은 관행을 걷어내는 노력과 더불어 그룹과 연관된 사회적 갈등 해결에도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해 2월 경영에 복귀한 이 부회장은 백혈병 피해자 측 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지난해 사회적 대타협 방식의 중재를 통해 보상에 합의했다. 타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던 지난 11년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여기에 삼성전자 제품의 수리·상담을 담당하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8700여 명도 직고용으로 전환해 사회적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단초를 마련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에 기업이 '해결사'로 나서는 사례도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에 보탬이 되겠다며 2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삼성의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사업이 그것이다.

이 사업은 삼성전자가 보유한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중소기업 생산라인에 접목해 불량률을 낮추고 최적의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레시피'를 해당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것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기업이 추구하는 이익의 방향성을 사회적 가치와 연결하려는 노력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 사회적기업들이 초기 성장 과정에서 열악한 이윤 구조로 인해 소멸되지 않도록 계열사별로 다양한 지원을 펼치는 것은 물론 그룹이 보유한 기술 등 유무형 자산을 협력사와 공유해 경쟁력 확대에 힘쓰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정부 근로시간 단축으로 재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 오히려 역발상으로 '주 35시간 근무'라는 파격을 선택했다.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기업이 솔선수범해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한 해법을 만들고, 사회 변화를 주도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대한 내부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마트와 백화점 등 신세계그룹 직원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 종전보다 여유롭게 가족과 저녁을 보내게 됐다.

그룹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과도한 비용 문제를 촉발할 수 있지만 기업에 부여되는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조치라는 인식이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나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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