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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4050총수의 과감한 협업…"이익 나면 적과도 손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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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 젊은총수 시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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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사업에서 경쟁 관계인 SK와 GS가 서로 손을 잡는다는 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지난해 GS칼텍스와 SK에너지가 협력해 주유소 기반 택배 서비스인 '홈픽'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석유화학 업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주유소 시장을 양분하는 두 회사의 협력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사업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경쟁사와 손잡는 이런 모델이 지속가능할지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허세홍 GS칼텍스 대표가 본격적으로 경영을 맡게 된 올해에는 이 같은 이종 협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GS와 SK는 스마트 보관함 서비스인 '큐부(QBoo)'를 추가로 론칭하는 등 '동반자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시장의 양대 라이벌인 두 그룹이 인프라스트럭처를 공유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GS는 SK뿐만 아니라 LG, 롯데 등과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내 것만 챙기겠다는 '가두리'식 사고에서 벗어나 경쟁자와 협업을 선택하는 사례는 최근 3·4세 젊은 총수들의 경영 과정에서 포착되는 가장 흥미로운 변화 가운데 하나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3·4세 경영자들의 사고방식과 사업 간 벽이 급속도로 허물어지는 시장 변화가 맞물려 이 같은 과감한 협업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삼성과 애플 사이에서도 현실이 됐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원한 적수'인 애플의 아이튠즈와 에어플레이 기능을 전 세계에 출시하는 스마트TV에 기본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7년의 특허전쟁을 합의로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협업이 가능할 수 있었다.

수용 가능한 타협점을 찾아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려는 이 부회장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종 업체와의 협업 등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 발상으로 초기 리스크를 줄이는 것도 실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3·4세 총수들의 공통된 패턴이다.

이우현 OCI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이종 업체인 포스코와 과감히 손잡고 제철 부산물을 활용한 합작 화학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포스코케미칼과 철강 공정 부산물에서 나오는 석탄화학 원료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협력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할 계획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산업용 고순도 과산화수소부터 카본 소재의 원료인 소프트피치 제조가 이뤄진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포스코만큼이나 이질적인 사업 영역인 제약 부문에서도 협업을 선택했다. 국내 유망 바이오 벤처기업 '에스엔바이오사이언스'와 50억원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창립 이래 처음으로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 진출한 것. 양사의 협업 배경에 대해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기업의 신사업 진출이 독자성에 기반한 것과 달리 지금은 상대의 강점을 흡수할 수 있는 합작이 늘고 있다"며 "여기에는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고 서로 강점을 극대화해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는 합리적 선택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시장 환경 변화는 젊은 총수들의 강점인 '데이터·디지털 역량'을 발현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박정원 두산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등은 디지털·데이터 중심 사고로 시장과 소통하며 사업의 DNA까지 바꾸려는 노력을 가열하게 진행하고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손잡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은 물론 조직 혁신에도 활용하고 있다. MIT가 효성그룹에 ICT, 신소재, 첨단제조,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 및 연구 결과 등을 소개하면, 효성은 MIT의 연구진과 지속적으로 기술과 정보를 교류해 신사업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조 회장은 특히 올해 취임 2년 차를 맞아 '100년 효성'을 준비하며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등 거대한 굴뚝산업 기반의 주력사를 상대로 전통 제조업과 정보기술(IT) 솔루션 등 첨단기술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다.

박정원 회장은 중공업, 기계 등 굴뚝산업 중심의 사업들에 '디지털 전환'을 적용해 체질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고디지털혁신담당(CDO)'을 신설하고 각 사업 영역의 디지털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우현 OCI 부회장은 재계에서 철저히 '데이터'를 중심으로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인물로 꼽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함께 수학한 그는 "시장 수요와 패턴을 데이터로 정확히 파악하고 예측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회사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는 투자설명회(IR) 자리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 시장과 소통해 왔다. 지난 2월 열린 2018년도 4분기 IR에서 이 부회장은 29쪽에 달하는 자료 내용을 직접 설명하며 모든 질의응답을 소화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IR 자리에서 최고경영진의 비전을 직접 듣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과거 권위적 프레임을 깨고 필요하면 기업 최고경영진이 직접 시장과 소통하려는 사례가 젊은 총수들 사이에서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용환진 기자 / 황순민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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