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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가짜 영웅’ 만드는 군이 ‘5·18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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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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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속의 최전선 밤낮없이 살피고/ 떠나는 그날까지 땀 젖은 전투복/ 저기는 지뢰지대 위험하니 내가 간다/ 지휘관의 그 외침 부하 위한 사랑이네/ 고귀한 그 정신 길이길이 받들어/ 사나이 붉은 가슴 나라 위해 바치리”

육군에서 만든 ‘위험하니 내가 간다’라는 제목의 군가다.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이 2000년 6월 전방 수색부대장 시절 후임 설아무개 중령과 함께 정찰에 나섰다 설 중령이 지뢰를 밟고 쓰러지자 병사들에게 “위험하니 내가 간다”는 말을 남기고 홀로 설 중령을 구하러 들어갔다는 영웅담을 담고 있다. 이 의원도 당시 지뢰를 밟는 바람에 발목을 잃었으나, 끝까지 병사들의 접근을 막은 채 소총과 철모를 끌어안고 지뢰밭을 기어나오는 투혼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그날 이후 ‘슈퍼 히어로’가 됐다. 살신성인을 행한 참군인이라는 칭송이 쏟아졌다. 보국훈장, 올해의 육사인상, 대통령 표창이 이어졌다. 그의 군인정신을 새긴 탑이 세워지고, 그의 전우애를 그린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신체장애를 입은 군인이 계속 군에 복무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기까지 했다. 2015년 9월 전역한 이 영웅은 6개월 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2번으로 금배지를 단다.

최근 <문화방송>(MBC)이 그의 영웅담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의원에게 ‘가짜 영웅’이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이 의원이 당시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수칙을 어기고 수색로를 벗어났으며, 그가 밟은 지뢰에서 튀어나온 파편이 오히려 설 중령에게 2차 상해를 줬다는 것이다. 수색부대장 현임과 후임이 모두 수칙을 어겼을 뿐 아니라 차례로 지뢰를 밟아 부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초래했으니 훈장이 아니라 징계를 받아야 마땅했는데도, 군이 조직적으로 공적을 조작했다는 지적이다.

군에서 칭송한 영웅이 훗날 논란에 휩싸인 예는 적지 않다.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에는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의 신화가 실렸다.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자주포를 앞세우고 춘천으로 진격해 오자 심 소령(당시 중위)이 특공대를 꾸려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자주포 탱크를 폭파했다는 영웅담이다. 이날의 공적으로 심 소령은 한국군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전쟁영웅’이 됐다. 국가보훈처가 2011년 ‘이달의 6·25 전쟁영웅’을 제정했을 때 첫번째로 꼽은 게 그였다.

그러나 당시 심 소령이 소속돼 있던 연대에서 중대장을 지낸 이대용 전 베트남 주재 공사가 2016년 “심 소령의 신화는 거짓”이라고 증언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춘천 전투에서 심 소대장은 육탄돌격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도망을 갔다. 그 바람에 대전차포 1문을 북한군에게 넘겨줘야 했다”고 말했다. 1981년 당시 육군본부가 ‘탈주병에게 훈장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조사를 벌여 심 소령의 공적을 허위로 결론내렸다는 증언까지 보태졌다.

가짜 영웅 논란에 휩싸인 이 의원은 이른바 ‘5·18 망언’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5·18은 애초 폭동이었는데,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4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가 진짜로 참군인이었다면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군의 역사를 누구보다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 의원의 5·18 망언은 그가 참군인이 아니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한겨레

가짜 영웅은 그를 만들어낸 집단의 보호를 받는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들 모두가 한순간에 거짓말쟁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가짜 영웅 논란에 군은 재조사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검토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군이 실제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군이 진실 앞에서 머뭇거릴 때 5·18 당시 미군 방첩부대 광주파견대에서 군사정보관으로 일했던 이는 “5월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직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광주에 직접 내려왔다. 거기서 사살명령이 내려졌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돌아온 헬기를 보니 싣고 갔던 벌컨포와 기관총 탄약 500발이 줄었더라는 한 군인의 증언도 나왔다. 가짜 영웅조차 가려내지 못하는 군이 5·18의 ‘진짜 역사’를 밝힐 수 있을까.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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