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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죽기 각오한 손학규 버티기, 그 뒤엔 3년 전 강진 '토굴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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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학규는 또다시 죽음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중앙일보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렸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손학규 대표를 향해 "당의 큰 어른으로서 용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구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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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는 듯했다. 조곤조곤한 평소 말투와 달랐다. “계파 패권주의에 굴복해 퇴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이 날 회견에서 손 대표는 ‘저 손학규는…’이란 표현을 6번 썼다.

15일 열린 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유승민계+안철수계’ 연합으로 오신환 신임 원내대표가 뽑히면서, 손 대표가 사퇴의 갈림길에 섰다. 1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선 최고위원 4명이 손 대표의 면전에서 "물러나라"고 했다. “이 당이 손학규 당인가”(오신환) “올드보이, 수구세력 청산하자”(하태경) “천 길 낭떠러지로 이끌지 마라”(이준석)는 날 선 메시지가 쏟아졌다. 권은희 최고위원은 “(계파 패권주의 발언은)해당 행위”라며 고성을 냈다. 그러나 회의 직후 손 대표는 “절대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①민주투사가 ‘독재자’ 비판까지

손 대표는 1970년대 서울대 졸업 후 빈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해외 유학 뒤 소장파 진보학자로 명성을 높이던 그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뒤엔 두 번 대표를 맡았고, 한때는 유력 대선주자로도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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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 김황식 국무총리(맨 오른쪽),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와 함께 '광야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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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표는 이미 두 번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08년 18대 총선과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다. 두 번째 은퇴 후 2년간 전남 강진 만덕산 토굴에서 칩거하다 2016년 복귀했고, 2018년 9월 바른미래당 대표로 선출됐다.

손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측도 “정치인 손학규의 인품과 생애는 존경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대표 임기 동안 뚜렷한 메시지나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4‧3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사퇴론이 불거졌지만, 이미 당내에선 “손학규 간판으론 혁신 이미지가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쌓여 있었다. 특히 사퇴를 거부하며 지명직 최고위원 2명을 임명하자 “불법 독재”(하태경)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②왜 버티나

손 대표가 퇴진을 거부하는 건 선거법 개정과 개헌 완수를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로 삼았기 때문이란 관측이다. 2016년 발간한 자서전 『강진일기』에서 손 대표는 “기존 권력구조를 혁파하는 ‘새 판 짜기’가 어쩌면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석에서도 종종 "선거 욕심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충격받는다. 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나.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해 선거제 개혁과 개헌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72세 나이로 단식까지 불사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만큼, 총선 전에 반드시 선거제 개편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제3 정당에 대한 신념도 강하다고 한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안철수계가 최근 유승민계와 함께 행동하는 데 대해 ‘내가 물러나면 두 세력이 연합해 한국당에 당을 넘겨 제3정당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를 (손 대표는) 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 대표는 16일 기자회견에서도 “수구 보수세력에 당을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반(反) 당권파는 손 대표의 ‘버티기’를 욕심으로 평가절하한다. 당 관계자는 “결국 개헌까지 밀어붙여서 ‘7공화국 첫 총리’가 되겠다는 욕심이 남아있는 것 아닌가”라며 “국고보조금이 나오는 교섭단체를 사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은희 최고위원은 17일 “7공화국은 대표의 꿈이지 당원들과 지역위원장들의 꿈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③출구 마련될까

사퇴압박이 거세도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않으면 당장 대표직 유지는 가능하다. 17일 이준석 최고위원이 “재신임 투표를 (최고위) 안건으로 상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손 대표는 거부했다. 일각에선 손 대표가 스스로 정한 마지노선인 9월까지 버티며 민주평화당과 연대하는 정계개편 움직임도 점쳐지지만, 당내 비판이 거센 터라 현실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당연직 최고위원인 정책위의장을 당권파로 임명하더라도 여전히 지도부가 ‘5(바른정당계) 대 4(당권파)’ 구도로 수적 열세라 정상적 최고위 운영도 어렵다.

결국 손 대표가 스스로 제안한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명예 퇴진’이 가능한 연착륙 방식으로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타협안도 나온다. 당권파의 한 의원은 “명예로운 퇴진이 가능한 어떤 발판도 없이 손 대표의 면전에서 사퇴를 요구하며 몰아붙이면 안 된다”고 했다. 오 원내대표는 “의원단 워크숍을 열어 지도체제에 대한 총의를 모으겠다”고 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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