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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文대통령 옆 유족 사연…“내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널 잡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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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희생자 안종필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어머니 이정임씨를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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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최후의 항전을 하다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등학생 시민군 고(故) 안종필군 어머니 이정님 여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5월 항쟁 당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마지막 가두방송을 했던 박영순씨가 무대에 나와 ‘그날, 5·18’이라는 주제로 참혹했던 광주의 상황을 소개하며 이 여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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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희생자 안종필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어머니 이정임씨를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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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사는 1980년 5월 광주상고(현 동성고) 1학년이던 아들 안종필(당시 16세)군을 잃었다. 안군은 고교생이었음에도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며 시내에 나가 시민군 활동을 도왔다고 한다. 이 여사는 자신이 당시 안 아팠다면 아들을 붙잡아 시위로 안 나가게 했을 것이라고 슬퍼했다. 이 여사가 병이 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5일 새벽 안 군은 또다시 거리로 나갔고 그것이 마지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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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중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고(故) 안종필 군 어머니 이정님 여사는 문 대통령 오른편에 자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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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여의고 홀로 1남 2녀를 키웠던 이 여사는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을 향해 “몸이 아파 배고프다는 아들에게 밥도 차려주지 못했다. 내가 안 아팠으면 너를 (못 가게) 잡았을 건데”라며 매일같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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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종필군. [사진 국립 5·18민주묘지]




안종필군의 조카인 안혜진씨도 무대에 나와 소년 안종필의 비극과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아픔을 감내해야 했을 안군 형의 이야기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사회자까지 안군 가족 사연을 들은 참석자들은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옆 자리에 앉은 이 여사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무대에 나섰던 문 대통령도 “광주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라며 기념사를 하다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정숙 여사는 옆자리에 앉은 다른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제39주년 5·18 기념식 직후 문 대통령은 이 여사의 아들 안종필 열사와 김완봉·조사천 열사 등 3인의 5·18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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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980년 5월21일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김완봉군(당시 15세)의 묘를 찾아 참배했다. 사진은 당시 김 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 [사진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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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중 3학년생이던 고 김완봉씨는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시작된 1980년 5월 21일 어머니를 찾으러 금남로로 나갔다가 목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김군의 어머니는 적십자병원에서 아들 시신을 찾았고 8일만인 29일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했다. 안장식날 가슴에 아들을 묻은 어머니의 한 맺힌 오열 모습이 묘역에서 취재하던 나경택 전 전남매일 사진부 차장의 렌즈에 잡혔다. 이 사진은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을 상징하는 사진 가운데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꼬마상주’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고 조사천(당시 34세)씨 묘역도 참배했다. 건축업을 하던 조씨는 5월 20일 처가 농사일을 돕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주교육대학교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학생들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뜯어말리다가 자신도 맞고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5월 21일 시민들이 몰고 다니던 트럭에 올라타 시위에 나섰던 조씨는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쏜 총을 맞고 급히 기독교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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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조사천씨(당시 34세)의 묘를 찾아 참배했다. 사진은 아들 조천호씨(당시 5세)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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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꼬마 상주사진’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알려져 있다.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 안치된 조씨의 영정을 든 당시 5살이던 아들의 모습이 외신기자 카메라에 포착됐다. 하얀 상복을 입고 영정 위에 턱을 괸, 슬픈 표정의 꼬마 상주 사진은 독일 ‘슈피겔’에 실렸다. 신군부에 의해 국내 언론에서는 금기시된 5·18인지라, 이 사진은 80년대 뒤늦게 국내로 몰래 반입돼 대학가에 돌면서 광주의 아픔을 전해주는 ‘5·18의 상징’이자,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주세력에 투쟁의 의지를 불타게 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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