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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민주당, 긴급조치·86·97세대의 톱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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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월 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인영 의원(왼쪽 세 번째)이 이해찬 대표 등과 손을 맞잡아 들었다. / 권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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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벌이는 ‘1980년 서울의 봄’ 논쟁에는 낯익은 현직 정치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른바 긴급조치 세대의 정치인들이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진술서 원본에는 심 의원과 유 이사장 외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부겸 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나와 있다. 이 논쟁에 유기홍 전 민주당 의원까지 가세했다. 이들 전·현직 민주당 의원은 심 의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2.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8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정견발표를 통해 프랑스의 디지털경제장관이 38세라는 점을 언급했다. 이 원내대표는 “박주민·김해영·강병원·강훈식·김병관·박용진·이재정·전재수·제윤경 의원님이 그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장관감’으로 이들 젊은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자, 의원들은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상호 이어 이인영 원내대표도 86세대
최근 ‘서울의 봄’ 논쟁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세대별 정치인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민주당 현역 의원에는 긴급조치 세대와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 ‘포스트 86세대(97세대)’가 분포돼 있다. 원내대표를 뽑는 국회 회의실은 이들 세대가 어우러지는 풍경을 연출했다.

투표 결과 역시 각 세대의 존재감이 드러났다. 이들 세 세대의 중심에 위치한 이인영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97세대의 이름을 언급한 이 의원은 ‘더 좋은 미래’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더 미래’에서는 97세대 의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이해찬 직계인 김태년 의원의 득표수는 예상보다 적었다. 이 대표 체제에 대한 반발로 해석됐다. 여기에는 ‘86세대’ 이전 세대의 수직적인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한몫한 것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의 한 의원 측은 97세대 의원들에 대해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더 미래’를 보면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세 세대의 중심에는 이인영 원내대표로 상징되는 86세대가 있다. 86세대는 이미 2016년 우상호 의원을 원내대표로 탄생시켰다. 이들 세대가 최고 3∼4선급 의원으로 중진 의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민주당의 86세대 정치인으로는 이인영·우상호 전·현직 원내대표를 비롯해 최재성·조정식·송영길·박완주·유은혜·서영교 의원 등이 있다. 원외로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장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내년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다.

86세대보다 앞선 긴급조치 세대로는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의원들이 있다.

2013년 9월, 당시 민주당이 야당일 때 이들 의원은 유신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를 비판하며 ‘민주당 긴급조치 세대 국회의원 일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시 성명서에는 신계륜·이종걸·추미애·노영민 의원 등 27명의 이름이 들어갔다. 20대 총선에서는 이들 중 민주당 이종걸·추미애·박영선·이상민·김상희·노웅래·민병두·우원식·유승희·홍영표·남인순·윤후덕·인재근·홍의락 의원과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이 당선됐다. 19대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김부겸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긴급조치 세대에 속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72학번), 강창일·원혜영·이석현 의원(71학번),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72학번)도 광범위하게 보면 긴급조치 세대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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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이들 긴급조치 세대 정치인이 국회에 대거 진출했다. 86세대는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 원장이 맨처음으로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17대 총선(2004년)에서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7대 총선은 86세대가 대거 국회에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86세대는 열린우리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에서 둥지를 틀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후폭풍으로 한나라당이 참패하고 열린우리당이 압승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대부분 3선급 이상 의원이 되면서 민주당의 중심세력이 된 것이다. 김민석 전 원장은 5월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86세대는 정치권에 ‘젊은 피’ 효과가 있었는데 이제는 리더십 효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97세대, 20대 총선 통해 정계 진출
86세대는 당 안팎에서 그동안 운동권 출신이라는 명망가로, ‘선수 쌓기’에만 몰두해 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정치공학에만 능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 의원은 “86세대 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말했다. 3∼4선급에 이르면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해졌다는 것이 이 의원의 설명이다. 우상호 의원이 장관직을 희망한 것도, 이인영 의원이 ‘내 자신부터 변하겠다’면서 원내대표에 ‘올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17대 총선이 86세대 정치인들에게 큰 기회였다면, 20대 총선은 97세대에게 하나의 기회가 됐다. 민주당이 예상 외로 선전하면서 97세대 정치인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시작은 86세대만큼 거창하지 않았지만 20대 국회에서 이들 의원의 활동이 점차 빛나기 시작했다. 이 원내대표가 언급한 박주민·김해영·강병원·강훈식·김병관·박용진·이재정·전재수·제윤경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박주민·김해영 의원은 이미 최고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들 중 몇몇 의원은 지난 1월 29일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에 대해 비판하면서 “법안소위 상시화 등 일하는 국회를 함께 만들기를 제안한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긴급조치 세대에 속하는 강창일 의원은 ‘97세대’ 의원들에 대해 “전문적인 영역에서 실력을 닦은 의원들이 많아 국회에 와서도 그 능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당내 한 관계자는 “86세대 정치인들이 국회에 와서 의정활동을 익혔다면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다가 왔기 때문에 국회에서 일취월장했다”면서 “이들 의원이 ‘더 미래’나 ‘을지로위원회’에서 선배 의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역량이 훨씬 더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예전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같은 소장파처럼 옳은 일이라면 소신을 내세우며 선배 의원들에게 맞서는 행동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한 의원은 97세대 정치인에 대해 “민주당이 여당이 된 이유도 있다”면서 “이들이 지도부에 불만은 있겠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요즘에는 소신을 내세우다보면 인터넷 댓글로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래전 ‘천신정’처럼 소신 있는 비판을 할 수 없는 환경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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