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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환영받지 못한’ 황교안 대표, ‘환영받은’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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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두풍경
황 대표, 군중에 막혀 200m 15분 걸려
기념식 후 20여분 항의 시민에 둘러싸여
후문 펜스3개 뜯어 없던 길 만들어 퇴장

조선일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황교안 대표의 5·18민주묘지 방문을 항의하는 학생들./ 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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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광주에서 환영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황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 등은 18일 오전 9시 30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 내 ‘민주의 문’ 앞에 도착했다.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시작 30분 전이었다. 5·18민주묘지 참배코스는 민주의 문 통과로 시작한다. 민주의 문 앞에선 광주지역 시민단체가 ‘5·18 광주 학살주범 전두환 추종하는 괴물 집단 자유한국당 즉각 해체하라’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황교안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선 ‘보수적폐청산 대학생 행동단’ 소속 대학생 30여명이 ‘전두환 후예정당 5·18 왜곡정당 한국당 당장해체’ ‘황교안 5·18기념식 참석을 함께 막아주세요, 황교안 오지마’ ‘5·18 역사왜곡, 5·18 진상규명방해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격앙된 상태였다. 박모(64·광주 용봉동)씨는 "황교안이 5·18을 왜곡하고 망언을 일삼는 자기당 의원들의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여기가 어디라고 낯짝을 들이미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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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 내에서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 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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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일행이 탄 버스는 시민들과 취재진에 가로막혔다. 간신히 버스에서 내린 황 대표는 당직자에 둘러싸인 채 거북이걸음으로 기념식장이 마련된 참배광장으로 이동했다. "황교안 물러가라" "못 들어가게 잡아" "황교안은 사죄하라" "막아 밀어" "안돼" "어딜 들어가" "진실을 밝혀라" "여기가 어디라고 와" 등의 항의가 쏟아졌다. 시민 8명은 바닥에 눕기도 했다. 일부 시민은 생수병에 들어 있던 물을 뿌리기도 했다. 민주의 문과 추념문을 거쳐 참배광장까지 200m 거리를 이동하는 데 15분쯤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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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 내 민주의문을 통해 걸어서 기념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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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57분쯤 문재인 대통령과 이용섭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등이 민주의 문을 통해 식장으로 입장했다. 일반인들과 참배 동선이 같은 코스다. 방금 황 대표가 고초를 겪었던 바로 그 길이었다. 시민들은 "사랑해요 대통령님" "건강하세요" 등의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전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당시 차량으로 묘소 동쪽의 유영봉안소 앞까지 이동해 식장까지 70여m를 걸었다. 이번엔 예상을 깨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내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대통령이 그때 참석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저는 올해 꼭 참석하고 싶었다.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5·18 역사 왜곡’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특히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항의를 받으며 험난하게 기념식장에 입장한 황 대표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같은 동선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5·18 이전, 유신시대와 5공시대에 머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다"고 자유한국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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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8일 5·18 기념식 후 없던 길을 만들어 빠져나간 민주묘지 후문 옆 비탈길 모습이다. 사진에는 철제 펜스가 있으나 차량이 이동할 당시 경찰은 이 펜스 3개를 뜯어 길을 만들었다/ 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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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기념식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묘소 2곳에서 유족과 대화를 나누며 묘비를 어루만진 뒤 오전 11시 17분쯤 유영봉안소 앞에 마련된 차량으로 5·18민주묘지를 빠져나갔다. 그 사이 황 대표는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또 가로막혀 있었다. 20여분 만에 우여곡절 끝에 5·18민주묘지 서쪽의 5·18추모관 쪽문을 통해 빠져나와 검은색 카니발 승합차에 탑승했다. 그런데 이 차량은 퇴로가 없는 5·18민주묘지 후문으로 향했다. 정문에 항의 군중이 밀집해 있어 후문을 선택한 것이다. 경찰과 5·18민주묘지 측은 인도에 있던 볼라드(차량진입 차단기둥) 2개를 황급히 뽑았다. 진출로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차량은 인도를 거쳐 후문 옆 비탈길을 올랐다. 비탈길 정상을 가로막던 폭 2m짜리 철제 펜스 3개도 경찰이 서둘러 뜯어냈다. 없던 길이 생겼다. 이날 비가 내렸다. 땅은 질었다. 차량 바퀴가 헛돌자 경찰 5~6명이 뒤에서 차량을 밀었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 황 대표를 태운 차량은 공권력이 임시로 뚫은 길이 아닌 길을 통해 광주를 빠져나갔다. ‘펜스 뜯기 작전’에 참여한 경찰은 "오늘은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며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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