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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독해지자"···트럼프 무역전쟁 압박에 한국전쟁 띄우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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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TV, '항미원조' 전쟁 영화 3일 연속 긴급 방영

무역전쟁 악화 속 반미 여론몰이 의도로 분석돼

북·중 결속 강화되고 한·중 관계 유탄 맞을까 우려

중국이 한국전쟁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전문 영화채널CCTV-6은 16일부터 18일까지 한국전쟁과 관련한 영화 3부작을 긴급 편성해 가장 많은 이들이 TV 앞에 모이는 저녁 황금 시간대에 방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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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창춘영화사가 제작한 영화 '영웅아녀'는 중국의 대표적인 이른바 '항미원조 전쟁' 영화 가운데 하나다. [중국 관찰자망 캡처]


CCTV-6 채널은 16일 저녁 갑작스레 ‘특별 알림’을 발표하고 당일 밤 8시 25분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지원) 전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웅아녀(英雄兒女)’를 내보냈다.

196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중국의 유명 작가 바진(巴金)의 소설 ‘단원(團圓, 가족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남)’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중국인민지원군의 고위 장교가 18년 전 잃어버렸던 딸을 한국전쟁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중국인민지원군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미군 등과 맞서 싸우는 용맹한 모습을 부각했고 중국군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삽입된 노래 ‘영웅찬가(英雄讚歌)’는 중국 전역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긴급 편성된 ‘영웅아녀’의 방영으로 당초 이날 예정됐던 프로그램 ‘아시아영화주간-레드카펫’은 밤 10시 20분으로 2시간 가까이 늦춰져 방송됐다. CCTV-6 채널은 17일 밤 8시 15분에는 항미원조 영화 2탄이라며 ‘상감령(上甘岭)’을 방영했다.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에서 자신들이 가장 처절하게 싸워 이긴 전투로 상감령 전투를 꼽는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내용이 실렸다. 중국군 사상자가 훨씬 많았음에도 목표한 고지를 사수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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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감령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져 1956년 첫 상영됐다. 중국은 상감령 전투를 항미원조 전쟁에서 가장 처절하게 싸워 이긴 전투라고 선전하고 있다. [중국 관찰자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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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감령’은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에 따라 당시 군사 영화를 가장 잘 만들던 창춘(長春)영화사가 제작한 것으로 삽입곡인 ‘나의 조국(我的祖國)’은 중국 전역을 흔들 정도로 반향이 컸고 지금까지도 불릴 정도다.

CCTV-6 채널은 18일 저녁 8시 15분에는 ‘항미원조 전쟁 영화 3부작’의 마지막으로 1960년 제작된 영화 ‘기습(奇襲)’을 방영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정찰부대가 미군 등으로 가장하고 침투해 작전상 중요한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중국이 60여 년 전의 한국전쟁 영화 방영에 나선 이유는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드러냈다. 환구시보의 총편집 후시진(胡錫進)은 18일 “중·미 무역전쟁이 치열해질수록 우리는 절로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된다”는 글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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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상영된 영화 기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 정찰대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중국 관찰자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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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이 날로 격화되자 미군과 처절하게 싸운 전쟁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중국인의 대미 항전 의지를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관영 방송이 동원됐다는 건 중국 당국이 전국적인 반미 여론몰이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일부 네티즌이 “영웅아녀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국인을, 상감령에선 버티는 정신을, 기습에선 중국이 잘 싸우는 모습을 봤다”는 댓글을 올리는 등 이미 효과가 나고 있다.

후시진은 항미원조 전쟁을 통해 현재 무역전쟁과 관련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3년의 한국전쟁 중 2년은 “싸우며 담판했다”며 “담판 테이블에서 미국의 고개를 떨구게 한 건 전쟁에서의 끝까지 버티는 정신과 성과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이 바로 상감령 정신을 발휘할 때”라며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래야 미국이 무역 담판 테이블에서 저자세를 보일 것이란 계산에서다.

환구시보는 17일 ‘미국은 지구전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사설을 게재한 데 이어 18일엔 ‘미국에 대한 각종 환상을 버리자’는 사설을 통해 미국이 행정권력으로 화웨이(華爲)를 제재한 건 경제 영역에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은 양보로 미국의 선의를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며 “중국도 마땅히 국가의 힘을 동원해 미국에 대한 보복을 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주도의 서방 여론에 신경 쓰지 말고 독한 방법으로 미국을 때리자”라고도 강조했다.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화웨이 규제에 나서자 “강도 논리” “히스테리 발광” 등의 거친 표현을 쓰며 격렬하게 반발했던 중국이 이제는 미국과의 전면전과 지구전을 상정하고 대대적인 반미 선전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반미 지구전 움직임은 북·중 결속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뤄지고 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반면 한·중 관계는 유탄을 맞을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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