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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LG '후' 바르는 펑리위안, 그 뒤엔 구본무의 진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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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떠난지 1년… 세상이 몰랐던 감동 경영

"'후(后)'와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부인)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에서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던 '후'와 인연을 만들고, 펑 여사를 감동시킨 건 구본무 회장님이었습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1주기(5월 20일)를 나흘 앞둔 지난 16일, LG그룹의 한 고위 인사는 뜻밖에 '후'와 구 전 회장에 얽힌 일화를 회고했다. 지난해 매출 6조7500억원에 1조원 영업이익을 돌파하며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LG생활건강 호실적의 바탕에는, 중국에서 승승장구하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 '후'가 있다. 그 '후'의 대성공 이면에는 구 전 회장의 중국 최고위층에 대한 '고객 감동 경영'이 있었다는 것이다.

'후'와 펑리위안의 인연

'후'가 지난해 크게 주목받은 건 펑리위안 여사가 애용한다는 보도가 나온 게 기폭제가 됐다. 펑 여사가 정말 '후'를 사용할까 하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펑 여사는 '즐겨 쓰는 한국 제품이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후'를 거명했다. '궁중'과 '왕후의 삶'을 브랜드 이미지로 내세우는 '후'와, 중국 주석 부인의 이미지가 어울리며 상승 작용을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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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구본무 당시 LG 회장이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 LG 전시관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 주석 왼쪽에 보이는 여성이 펑리위안 여사다.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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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이 중국 저장성(浙江省) 당 서기였던 지난 2005년, 저장성 항저우(杭州) LG생활건강 공장으로 당 서기실의 전화가 걸려왔다. 10명 정도의 방문단이 한국에 갈 예정이니 방문할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LG생활건강 중국공장으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은 구본무 회장은 "프로그램은 우리가 짜서 잘 모실 테니 그냥 오시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구 회장은 그해 7월 방한한 저장성 방문단을 직접 안내해 갖가지 산업시설을 견학시키고 한국 문화를 체험케 했다. 그리고 국내 출시 2년밖에 안 돼 중국에 진출하지도 못했던 '후'의 최고급 화장품 세트를 시 주석을 비롯, 중국으로 돌아가는 방문단에 선물했다. 선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손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지시로 시 주석이 '후' 브랜드를 잊을 만하면 선물세트를 보냈다. 펑 여사는 자연스럽게 '후'를 사용하는 최고위급 고객이 됐다. 2006년 '후'는 중국에 진출해 상하이 바바이반(八百伴)·주광(久光), 베이징 SKP 등 최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지금은 206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유력 브랜드로 성장했다.

중국에서 '후'의 성공은 철저한 고급화 전략과 VIP 마케팅을 통한 것이었다. VIP 고객을 초청해 'K뷰티'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상위 5% 고객을 공략했다. 2017년에는 베이징의 최고급 호텔인 포시즌스에서 '궁중 연향 인(in) 베이징' 행사를 열어 '후'의 최고급 라인인 '비첩'을 홍보했다. '신비로운 브랜드' 스토리를 구축하는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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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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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후'가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돌파하자 이듬해 초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을 찾아갔다. 두둑한 성과급을 받은 차 부회장은 성과급 봉투를 구 회장에게 내밀며 "이건 회장님 것입니다"라고 했다. 구 회장의 'VIP 마케팅·고객감동경영'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뜻이었다. 구 회장은 껄껄 웃으며 봉투를 물렸다.

LG그룹의 또 다른 고위 임원은 소탈했던 구본무 회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사업 파트너인 한 외국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했을 때 구 회장은 식당에서 저녁 대접을 한 후, 굳이 자택으로 가자고 했다 한다.

구 회장 가족들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 외국 손님과 함께 들이닥친 구 회장을 보고 놀랐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구 회장은 그 외국 회사 최고경영자를 향해 "아일랜드 출신이시니 '오 대니보이'를 불러드리겠다"며 집에 있던 간이 노래방 마이크를 잡았고,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불렀다. 감동한 그 외국 회사 CEO는 그때의 기억을 거래처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회장님'

격식을 차리지 않고,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구본무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두고두고 회자(膾炙)되고 있다. 공식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에도 수행원 한 명만 대동했고, 휴일 개인 업무를 볼 때는 아예 수행원이 없었다.

직원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렸다. 이른바 '을(乙)'을 만날 때에도 정해진 약속 시간을 꼭 지키고, 대화를 할 때에도 자신이 나서서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주로 듣는 쪽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한다. 지난해 5월 22일 구 회장의 발인은 고인의 뜻에 따라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가족들만 모인 채 화장(火葬)으로 치렀다. "다른 분들 귀찮게 하지 말고 장례는 검소하고 조용히 치러달라"는 고인의 마지막 당부에 따른 것이었다. 화장한 뒤 유해는 생전에 자신이 가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화담숲의 나무뿌리 옆에 수목장(樹木葬)으로 묻혔다. 재계 총수로는 이례적인 수목장이었다.

구 회장은 평소 사회 각지에 있는 의인들에게 표창이나 상금을 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유족들은 지난해 말 구 회장의 유지에 따라 LG복지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상록재단 등에 50억원을 기부했다. LG그룹은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나 LG복지재단 이사회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기부 사실이 알려졌다.

LG의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구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장남 구광모 회장은 아버지가 쓰던 집무실을 지금껏 비워뒀다가 1주기를 앞둔 최근에야 방을 옮겼다.




[김덕한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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