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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핀란드, 4년마다 여야 합의… 정책 연속성 유지 [효과 못 내는 국정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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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국정과제 추진 모범국 살펴보니 / 정권 바뀌어도 폐기될 일 없어 / “통합·신뢰하는 사회 전제돼야”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핀란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경제적으로 구소련 의존도가 높았기에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됐죠. 그 상황에서 핀란드 정치인과 국민은 자신들의 미래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며 정책을 추진해야 할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입니다.”(박준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관된 국가 장기비전을 추진하는 모범 사례로는 단연 핀란드가 꼽힌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스웨덴과 러시아 두 강대국 사이에서 부침을 겪었다. 국가의 ‘내일’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현재의 안정적 제도는 1990년대 초 경제위기를 겪으며 정착됐다.

박 부연구위원은 “당시 총리실 산하에 정책분석과를 만들고 의회에는 의회미래위원회라는 상임위를 설치했다”며 “두 조직이 서로 협력과 견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 의제’를 논하는 의회미래위는 성격이 독특하다. 1993년 임시위로 출발해 2000년에 상임위가 됐는데 입법권이 없다. 정쟁에 휘말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법안을 다루지 않는다. 박 부연구위원은 “입법권이 없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라 여길 수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엘리트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가 이 상임위”라고 설명했다.핀란드는 4년에 한 번씩 정부미래예견 보고서를 낸다. 총리실 지휘 아래 보고서를 만들어 시민 의견을 모으고 여야 합의로 의회 의견을 첨부하니,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 장기비전이 폐기될 일이 없다.

핀란드가 흔들림 없는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요인으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우선 총리실이 주도권을 잡고 강하게 추진하되 부처 간 협업이 잘 이뤄진다. 또 국정과제가 정책 현장으로 바로 연결된다. 정책의 최종 소비자는 국민이라 여기기에 장기 과제 발굴에 국민 참여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는 이 때문에 핀란드 모델을 참고 삼아 지난해 국회 미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박 부연구위원은 “경제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고 외교·안보도 주변 4강의 입김이 크다는 면에서 우리 상황은 90년대 초 핀란드와 비슷하다”며 “그렇기에 외부 환경을 주시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기 국정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국가로는 핀란드 외에도 싱가포르, 캐나다 등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제도 마련에 앞서 사회적 성숙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박 부연구위원은 “미래 예견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보고 A, B, C 각 시나리오가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준비하는 것”이라며 “결국 미래 예견을 잘하려면 통합되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연구원 김윤권 행정관리연구실장은 “미래 예견 조직은 전문성·지속가능성이 관건인데 우리는 정치적 입장차에 따라 (국정과제를) 뒤엎어 버리니 지속성이 없다”며 “합리적 토론 문화, 증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 문화가 선결돼야 이를 담는 그릇인 정부 조직의 형태를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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