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7 (일)

[나 기자의 Activity]폴댄스 배워보니-봉에 매달려 빙글빙글…여성 전유물? NO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솔직해져 보자. ‘폴댄스(pole dance)’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좋다고는 말 못하겠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다. 담배 연기 자욱한 지하 클럽에는 어김없이 헐벗은(?) 복장의 ‘폴댄서’가 등장한다. 천 쪼가리 하나 몸에 걸친 스트리퍼가 봉을 잡고 몸을 휘적거리면, 곁에 있던 술 취한 남정네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폴댄스를 우리말로 바꾸면 ‘봉춤’이다. 말 그대로 봉과 함께 추는 춤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수직으로 설치된 기다란 봉을 벗 삼아 각종 춤사위를 펼쳐 보이는 스포츠다. 앞에 얘기한 것처럼 폴댄스는 과거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폴댄스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괴짜’, 심하면 ‘스트리퍼 지망생’으로 여겨지고는 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인식이 달라졌다. 폴댄스가 어두컴컴한 지하 클럽에서 양지로 나왔다. 연예인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너 나 할 것 없이 폴댄스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뛰어난 운동 효과 덕에 다이어트 목적으로 폴댄스를 배우는 이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근래에는 남성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폴댄스 체험에 나섰다.

매경이코노미

과거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폴댄스가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사진은 대한폴댄스연맹 마곡·발산점에서 ‘맨폴’ 체험 중인 기자의 모습. <사진 : 최영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폴댄스에 대한 오해와 편견

▷과도한 노출? 금남의 운동? NO

폴댄스 체험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워낙 생소한 스포츠인 데다 폴댄스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증도 컸다. 결국 호기심이 두려움을 눌렀다. 15개 학원을 운영하는 등 한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폴댄스 교육기관 ‘대한폴댄스연맹’에 전화를 걸어 폴댄스 체험을 문의했다. 기자와 대한폴댄스연맹 관계자 사이 오고 간 문답은 고해성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신체 노출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부끄러워서 못할 것 같아요.”

첫 번째 고민은 노출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폴댄스는 특성상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몸에 양손을 제외하고는 봉을 붙잡을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없다. 설상가상 스테인리스 재질의 봉은 매우 미끄럽다. 봉 위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맨살의 마찰력을 이용해야만 한다. 노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실제 여성용 폴복은 기껏해야 쇼트 팬츠와 브라 톱 정도로 구성된다. 사실상 비키니다. 인도 전통 요가에서 기원한 폴댄스가 스트리퍼와 클럽의 선택을 받게 된 이유도 노출이 많은 의상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다행히 “남자 폴댄스 상의는 민소매 티나 반팔 티, 하의는 짤막한 반바지 정도면 충분하다”는 대답이 대한폴댄스연맹 관계자로부터 돌아온다. 그 정도라면 허용 가능한 수준이다.

두 번째 고민은 성비다. 폴댄스는 흔히 여성이 즐기는 운동으로 알려졌다. 과거 요가나 발레가 가졌던 이미지와 마찬가지다. 포털이나 SNS에 ‘폴댄스’를 검색해봐도 남자 영상이나 사진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대한폴댄스연맹 관계자는 “최근 남자 수강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수업이 생겼다. ‘맨폴’이라는 클래스다. 남자 강사가 진행하고 프로그램도 일반 폴댄스와는 조금 다르다”고 설명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도 고백해본다.

마지막으로는 근력 부족이다. 봉에 매달릴 때 엄청난 근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체험하러 갔는데 봉에 매달리지도 못한 채 돈만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감이 들었다. “제가 봉에 매달릴 수나 있을까요?” 대한폴댄스연맹 관계자는 이제 짜증을 낸다. “무슨 놈의 걱정이 그렇게 많냐”면서 “일반적으로 근육량이 남성보다 훨씬 부족한 여성도 첫날부터 봉을 탈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그래, 한번 해보자.

매경이코노미

봉을 잡고 매달린 채 균형을 유지하려면 온몸 근육을 골고루 활용해야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봉 위에서

▷온몸 근육 ‘비명’…살갗도 쓸려

지난 5월 14일 저녁 8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맨폴’ 수업을 진행하는 대한폴댄스연맹 마곡·발산점을 찾았다. 밝은 조명과 환하게 빛나는 스테인리스 봉이 마음 한구석 남아 있던 불안한 마음을 없앤다.

저기 10개 봉 중 하나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 마치 중력을 거스른 듯, 일자 수평 상태로 봉에 매달려 공중에 떠 있는 이는 맨폴 강사 정세화 씨(25)다. 대한폴댄스연맹 소속 유일한 남자 강사다. 2017년 12월부터 폴을 탔다고 하니 ‘봉력(?)’이 1년 6개월 정도 된 셈이다. 그는 “폴댄스 매력에 빠진 이후에는 강사가 될 생각으로 전문가용 수업을 들으면서 폴댄스를 배웠다. 운동을 하면서 체중 감량과 몸매 관리에 성공했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운동 효과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향후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저녁 8시 30분. 드디어 수업 시작이다. 기자를 비롯해 남자 4명이 각자 폴 앞에 자리를 잡았다. 2명은 2개월 이상 수업을 듣고 있는 정규 회원, 다른 1명은 오늘 처음 폴댄스를 체험하러 온 사람이다. 폴댄스 배우기 전 워밍업 운동을 20분가량 진행한다. 정세화 강사는 “폴댄스는 팔 힘만 사용하는 운동이 아니다. 다치지 않기 위해, 또 보다 효율적인 운동을 위해 다양한 부위 근육을 풀어주고 또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드디어 봉과의 만남이다. 지름 5㎝의 봉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회전하는 형태로 설계됐다. 영어로는 ‘스피닝 폴’이라고도 한다. 봉에 매달려 공중을 돌며 갖가지 포즈를 취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작정 봉에 매달려봤지만 금세 ‘쪼르륵’ 미끄러졌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손에 ‘그립제’를 바르고 봉을 수건으로 닦아야 한다.

수업에서는 다양한 폴댄스 기술을 배운다. 현존하는 폴댄스 기술 종류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수업 첫날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 3~4가지를 배운다. 두 팔을 높이 들어 봉에 매달린 채 두 다리를 벌리고 봉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기술은 ‘피터팬’이다. 회전하는 상태에서 양발을 가지런히 모으면 ‘돌핀’, 무릎을 90도로 굽히고 들어 올리면 ‘체어’다. ‘클라임’도 있다. 영어 이름처럼 봉에 기어올라 몸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오른쪽 발등과 왼쪽 아킬레스건 부위로 하단부를 감싸 안아 봉을 오르는 자세다.

말로 설명하는 것은 참 간단하다. 하지만 고작 4가지 기술을 배우는 30분 동안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그간의 운동과 가장 다른 점은 근육뿐 아니라 살갗까지 아프다는 점. 몸을 지지하기 위해 마찰력을 활용하다 보니 살이 쓸린다. 강사나 정규 회원 2명의 몸을 훔쳐 보니 멍든 자국이 역력하다. “아프지 않냐”는 질문에 “한두 번 지나면 신기하게도 전혀 아프지 않다”고 대답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정세화 강사는 돌아가며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교정해준다. “팔꿈치가 봉 밖으로 빠져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라든지 “허리에 힘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가 앞으로 쏠리는 것” 등등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피터팬, 돌핀, 체어, 클라임’으로 이어지는 연속 동작 훈련을 마지막으로 첫날 수업이 마무리됐다.

▶춤보다 기계체조 가까워

▷근력·유연성 요구…운동 효과 UP

살면서 봉에 매달릴 일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고백하건대 초등학교 시절 철봉에 매달려본 이후 처음인 듯싶다. 폴댄스는 그만큼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골고루 자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신 근육을 쓰는 운동인 덕에 팔 힘이 모자라도 손쉽게 봉을 탈 수 있다. 클라이밍과 비교하면 악력이나 팔 힘이 훨씬 덜 든다.

우아한 몸동작과 움직임이 가져다주는 매력도 폴댄스만의 장점이다. 영화에서 스트리퍼가 봉만 대충 잡고 부비적거리는 동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춤보다는 오히려 기계체조에 가까운 느낌이다. 정세화 강사의 시범 동작을 보면서는 ‘운동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봉에 매달려 돌며 공중에 발을 내딛는 ‘에어워크’라는 기술을 선보일 때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수강생 전원이 남성인 덕분일까. 생각보다 거부감도 덜하다. 기술을 시도할 때면 주변 회원들이 다 함께 ‘으쌰으쌰’ 응원해주는 분위기다. 체험 이전 연상됐던 퇴폐적인 분위기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9호 (2019.05.22~2019.05.2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