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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고 장자연 사건

장자연은 왜 죽음 선택했나… 이 물음엔 시종 침묵한 과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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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 과거사위 발표]

과거사위 "주요 내용 아니다"라며 보도자료에 싣지 않아

장자연 사건의 핵심 의혹은 ‘장씨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가’였다. 사건 초기 이른바 ‘장자연 문건’이 유서로 알려지면서 문건에 적힌 접대와 폭행이 원인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렸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일부 언론이 ‘문건 내용’이 아니라 ‘문건 유출’이 실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증거를 제시했고 탤런트 이미숙씨 등 관련 인물도 실명으로 거론했다. 그러자 이씨는 지난달 스스로 과거사위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조선일보

정한중(가운데)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장 대행이 20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과거사위는 이날 '고(故) 장자연씨 사건'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13개월에 걸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과거사위의 조사·심의는 마무리됐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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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찰 과거사위가 20일 내놓은 보도 자료에는 이 부분이 실리지 않았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주요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2010년 이미 법원은 이씨와, 이씨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 유장호씨의 책임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장자연 문건은 이미숙씨를 위해 작성”

‘장자연 문건’은 오랜 기간 유서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문건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장자연씨가 연예기획사 대표 유장호씨와 함께 만든 소송용 문건이라는 것은 10년 전 수사 당국과 사법부에 의해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 문서가 유서로 알려진 것은 장씨 사망 직후 유 대표가 이 문건을 유출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유서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2010년 수원지법은 "(유장호씨가) 장자연 소속 연예기획사 대표 김종승씨와 소송 중인 (탤런트) OOO나 소송이 예상되는 이미숙을 도와 다양한 방법으로 김씨를 압박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작성하도록 한 문서”라고 판결했다. 앞서 경찰도 “소송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해 작성된 소송 문건”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미숙씨와 OOO씨는 김 대표의 연예기획사에서 유 대표의 기획사로 이적하면서 계약 위반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유장호 대표가 소속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분쟁 중인 김씨에 대한 비리 문건을 장자연씨에게 요구해 받아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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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의 유족과 친구들은 사건 초기부터 문건 작성에 유장호 대표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검경 조사 결과 장씨는 2009년 2월 유장호 대표 사무실에서 유 대표와 함께 3시간 30분 동안 문건을 작성했다. 장씨의 친구 이모씨는 경찰에 “자연이가 (문건 작성 후) 집에 와서 ‘이제 좋게 풀릴 수 있겠어’라고 했다”며 “유 대표가 다른 여배우의 접대와 상납 비리가 적힌 문건을 보여주며 네(장자연)가 당한 것과 비리를 적어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유장호 대표가 장자연씨에게 문건을 요구한 것은 물론 작성에도 개입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장씨가 이 문건의 작성을 주도할 능력이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이 문건의 일부 내용은 유장호 대표가 아니면 장씨 스스로 적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판결했다.

◇“장자연 자살 원인은 문건의 유출 우려”

법원은 장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문건에 적힌 김씨의 부당한 대우 때문인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부당한 대우’란 문건에 적힌 소속사 김종승 대표의 접대 요구와 폭력을 말한다. 친구의 진술에 따르면 장씨는 적어도 문건을 작성한 직후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장씨 죽음 1년 뒤인 2010년, 법원은 장씨 죽음의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 소속사와의 갈등, 그리고 문서 유출의 우려를 지목했다. 2014년에도 법원은 장씨의 자살 원인에 대해 “문서의 유출 우려 등의 상황에 처해 평소 앓고 있던 우울증이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장씨는 숨지기 전 유장호 대표에게 문건을 돌려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고, “문서가 공개되면 둘 다 죽으니까 비밀을 지켜 달라”고 했지만 이 부탁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문건 작성 다음 날 유 대표는 이미숙씨를 찾아가 문건을 만들었다고 알렸다. 이씨는 이 소식을 연예계 실력자이자 경찰 수사에서 장씨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MBC 출신 정모 PD에게 알렸다. 이씨는 “유장호 대표가 장자연씨와 함께 문건을 들고 찾아갈 테니 읽어보고 김 대표를 야단쳐 달라”고 했다. 정 PD는 “3월 9일에 만나자”고 말했다. 유 대표는 7일 장자연씨에게 “월요일(9일)에 나랑 누구 만날 거 같아. 오후에 스케줄 비워줘”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장씨는 이 메시지를 전송받고 4시간 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미숙씨가 이처럼 문건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다급했던 상황은 장씨가 죽은 3년 뒤인 2012년, 이씨와 김씨의 옛 기획사 간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이씨는 계약 기간 만료 이전에 김씨 기획사를 이탈함으로써 이 기획사(소송 당시 김씨는 대표직에서 사임)로부터 위약금 2억원을 요구받고 있었다. 여기에 사생활 문제까지 제기될 상황이었다. 연예계 주요 인물들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의지할 곳을 찾던 장자연씨가 비극적으로 말려든 것이다.

[윤주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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