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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단독]유럽서 온 부부 연구원 "언어 특성 넘나드는 파파고 번역 엔진 연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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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고 연구원 클렁셩·니코리나 부부 인터뷰
프랑스 그르노블에는 네이버의 연구개발(R&D) 자회사 네이버랩스가 있다. 네이버랩스가 2017년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인수해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인공지능(AI) 등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 연구진 80여 명이 이곳에서 일한다. 이곳의 부부 연구원 스테판 클렁셩(36)과 바실리나 니코리나(37)는 네이버의 AI 번역 서비스 ‘파파고’의 공동연구 프로젝트 차 지난해 8월 한국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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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AI 번역 서비스 '파파고'에 다니는 스테판과 바실리나.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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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인 남편 스테판은 프랑스 국립 이공계 그랑제콜(INP-ENEESHIT)에서 응용수학ㆍ컴퓨터공학과 검색엔진을 공부했다. 논문 피인용 건수가 1000건을 넘어가는 상위 1%급 연구원이다. 러시아인인 바실리나는 ‘프랑스의 MIT’로 불리는 파리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에서 컴퓨터 응용공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중앙일보는 13일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두 연구원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인터뷰 전 “지난주에 아이들과 전주와 보성 녹차 밭, 설악산 하이킹을 다녀왔다”며 “프랑스도 한국처럼 산이 많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 왜 AI 번역 연구원이 됐나.

A : (바) 항상 언어를 사랑했다. 사람들이 표현하려는 의미들이 단어로 바뀌는 과정이 좋았다. 자연스레 전공과 연결해 언어의 수학적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엔 ‘AI 번역’이 아직 세련된 개념이 아니었다. 그땐 번역기에 들어가는 기술을 자연어 처리(인간의 언어를 컴퓨터가 처리하게 하는 기술)라고 불렀다.
A : (스) 어릴 때부터 책과 문학, 수학을 좋아했다. 석사를 수료했을 때쯤 AI 번역으로 업계 흐름이 변했다. 자연스레 내 관심사와 전공을 융합해 이쪽 연구자가 됐다.


현재 ‘AI 번역’으로 불리는 기술은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NMT)’이다. 사람의 뇌가 언어를 학습할 때처럼 문맥을 볼 줄 안다. 구글과 네이버, 카카오 등이 이 기술을 쓴다. 바실리나는 NMT가 나오기 전 통계기반 번역(SMT) 시절부터 이 연구를 해왔다. SMT는 원문과 번역문을 놓고 그 안에서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이다. AI 번역보다 문맥 파악력이 떨어진다. 때때로 사람의 ‘눈(目)’이 내리는 ‘눈(雪)’으로 번역 오류가 났던 이유다.

AI 번역 분야는 아시아권에선 아직 미개척지다. 다양한 연구 사례와 논문이 있는 영미권과 유럽에 비하면, 아시아 IT 대기업 중 AI 번역을 연구하는 곳은 네이버와 중국의 바이두, 일본의 라쿠텐 정도다. 네이버랩스유럽이 두 사람을 파파고로 보낸 이유다. 이들은 AI 번역의 수학적 모델링을 연구하는 동시에, 러시아어와 프랑스어의 번역 품질 개선을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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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과 바실리나가 '파파고'를 이용해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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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파파고에선 무슨 일을 하나.

A : (바) 자유롭게 기계 번역을 연구한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어떤 언어든 번역이 잘 되게 하는 일종의 수학적인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A : (스) 번역 기술은 언어 의존적이지 않다. 자동차 엔진이 가솔린이냐 LPG냐에 따라 바뀌는 것과는 다르다. 어떤 연료(언어)를 쓰든지 번역이 잘 되게 하는 엔진 모델을 정교화하고 있다.




Q : 언어, 특히 한국어 번역에서 가장 힘든 점은.

A : (스) 한국어가 형태론적으로 풍부한 언어는 맞다. 하지만 AI 시스템 구축 면에선 콕 집어 한국어라기보단 어떤 언어든 번역 오류가 왜 났는지 알아내는 게 가장 어렵다.
A : (바) 서로 결이 다른 텍스트를 AI에 학습시키기도 까다롭다. 학술지인지, 친구들과의 수다인지, 기사문인지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야 하니까.




Q : 번역 오류는 문화 차이 때문인 경우도 많다. 파파고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A : 보통 아시아인들은 면전에 대고 ‘노’라고 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인들은 그냥 말한다. 파파고는 소통을 돕는 도구일 뿐, 이런 차이까지 잡아낼 순 없다. 몇 세대가 지나면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Q : 파파고 팀끼린 소통할 때 파파고를 쓰나.

A : 그냥 영어 쓴다(웃음). 채팅은 라인을 쓴다.




Q : 한국과 유럽의 연구환경은 어떻게 다른가.

A : (스) 프랑스에선 ‘프랑스 프로젝트’와 ‘유럽 프로젝트’를 따로 진행했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다. 한국에선 일본, 중국 기업과 대륙 단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이 드물다. 또 연구 차원에서 누군가를 만나려면 일일이 약속을 잡고 굉장히 복잡한 서류 작업을 거쳐야 하는 점이 힘들다. 유럽에선 그냥 옆에 있는 민족학자나 인류학자와 앞으로의 사회를 논의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A : (바) 유럽에선 분야 간 협업을 하기가 아주 수월하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 ‘같이 할래?’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유럽이 협업과 토의가 많아서 일이 느긋하게 흘러간다면, 한국은 업무에 훨씬 집중한다. 대부분 팀 내에서 빠르고 효율적이게 일 처리를 끝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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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라인에는 파파고 기술이 적용된 통역 챗봇이 있다. 문장을 입력하는 그 즉시 통역해준다. 현재까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지원된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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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카톡보다 라인이, 구글 번역보다 파파고가 낫나.

A : (바) 라인은 자동 통역 챗봇이 편해서 쓴다. 구글 번역은 거의 안 쓴다. 파파고가 음성인식도 잘 되고 웨일(네이버가 개발한 웹 브라우저)과 연동돼서 편리하다. 대화할 때나 쇼핑할 때, 배달시킬 때마다 쓰고 있다. 사용자로서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 데도 좋다.


파파고는 지난 3월 월간 순 이용자(MAU) 수 100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앱만 놓고 볼 땐 구글 번역보다 이용자가 많다. 일대일 대화 번역과 사진 속 글자 번역, 높임말 번역 등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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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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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한국에 오기 전 기대나 걱정은 없었나.

A : 한국 기업문화가 위계적이고 수직적이란 얘길 많이 들었다. 예컨대 ‘박사님’ 같은 타이틀이 중요하고, 상사가 집에 갈 때까지 술자리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네이버는 우리가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수평적이고 서구적이었다. 여성이나 외국인 차별도 거의 없고 ‘○○님’으로 부르는 것도 좋다. 네이버는 한국과 우리가 있던 곳(유럽)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다.




Q : 유럽에서 네이버 인지도는 어떤가.

A :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네이버랩스가 제록스(XRCE)를 인수한 뒤부터 연구계에서 꽤 유명하다.




Q : 세계적으로 봤을 때 네이버의 기술 수준은 어떤가.

A : 지금 유럽 인터넷 시장엔 구글 외에 대안이 없다. 구글의 대체재를 노리는 곳 중 네이버만큼 기술력이 뛰어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누가 들어오더라도 (축적된) 데이터 면에서 미국과 동등하게 경쟁하긴 어렵다. 미국 기업이 유럽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두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부족해도 경쟁할 수 있게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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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지난 13일 경기 성남시 정자동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파파고 연구원 스테판과 바실리나를 만났다.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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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8월에 프랑스로 돌아간다. 돌아가면 한국의 무엇이 가장 그리울 것 같나. 또 지난 열 달간 그리운 게 있었다면.

A : (바) 친구들, 와인과 치즈가 그리웠다. (스) 그리고 깨끗한 공기(웃음). 돌아가면 한국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와 파파고 팀원들이 그리울 거다.


분당=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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