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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재서 총신대 총장 내정자 "인내로 시각장애 이겨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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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교수 퇴임하고 이사회서 만장일치로 총장 선출

"학교 정상화하고 기금 모을 것…예장 합동 교단과 관계도 회복"

연합뉴스

기자 간담회 하는 이재서 총신대 총장 내정자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총신대학교 제7대 총장 내정자인 이재서 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5.22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회는 또 있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인내입니다."

총신대학교 제7대 총장에 내정된 이 대학 이재서(66) 명예교수는 22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로부터 어떻게 시각장애를 이겨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어지간하면 혼자서 참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25일 4년 임기 총장 취임을 앞두고 마련한 간담회에서 이 내정자는 인내를 거듭 강조했다. 간담회에 동석한 부인 한점숙 씨와 잘 지낸 비결에 대해서도 웃으며 "참는 것밖에 없다"고 답했다.

전남 순천 황전면 출신인 이 내정자는 빛도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인 12세에 차츰 시력이 약해졌고, 이듬해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어려서 앓은 열병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가족이 농사를 지으러 나가면 집에 홀로 남았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시간을 보낼 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거닐던 통학로를 회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내정자는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했지만, 극복할 길이 없었다"며 "그냥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시각장애는 그에게 극심한 고통을 남겼지만, 고향을 벗어나 공부할 기회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맹학교에 진학했고, 총신대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이후 1996년 모교인 총신대 신학과 교수가 됐고, 2002년 자신이 설치를 주도한 사회복지학과로 자리를 옮겨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연합뉴스

이재서 총신대 총장 내정자 기자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총신대학교 제7대 총장 내정자인 이재서 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5.22 jieunlee@yna.co.kr



총신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예장합동) 교단이 설립한 신학대학이지만, 이 내정자에게 적지 않은 시련을 줬다. 1977년 2월에는 학교 측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 원서 접수를 거부해 7시간 동안 기다렸고, 교수로 근무하면서도 다양한 차별을 당했다.

그는 장애인 차별의 원인으로 나쁜 품성이 아니라 무지를 꼽고는 "총신대에 입학할 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학교가 내리는 처분을 두말없이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지난봄 11명이 참여한 총장 선출 과정에서 줄곧 1위를 달렸고, 이사 10명은 만장일치로 그를 총장으로 뽑았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신학과 출신이 아닌 인물로서도 처음으로 총신대 총장이 됐다.

그는 "총장은 꿈이 아니었지만, 주변 권유로 응모해 당선됐다"며 "국내 대학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시각장애인 총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총장이 되면 먼저 전 총장이 부정 청탁을 위해 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되고 교내 갈등과 반목이 지속해 어수선한 학교를 정상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내정자는 "몇 년간 교수회의가 열리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는데, 구성원들이 본래 주어진 역할에 매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전 총장이 잘라낸 예장 합동 교단과의 관계도 복원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열악한 학교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총장으로서 학교를 잘 경영해야 할 책임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해야 할 막중한 책임도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국에도 헬렌 켈러 같은 훌륭한 장애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희망도 이야기했다.

"제가 총장이 됐을 때 저를 모르는 사람도 장애인이 경험하는 뚫리지 않는 벽을 대신 넘어선 듯한 대리만족을 한 것 같습니다. 장애인도 노력하면 총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꿈을 지켜야 합니다."

이 내정자는 총신대 학생이던 1979년 장애인 선교 단체인 한국밀알선교단(현 세계밀알연합)을 만들어 20여 개국에 선교단을 둔 기관으로 키워냈다. 이러한 경험이 총장식 수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 교회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는 일을 소홀히 하는 듯하다"며 "초창기 선교사들이 어려운 사람을 도왔듯이 고통당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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