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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이탈리아입양가정협회 "韓뿌리 기억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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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에 위치한 한국입양아가정 단체 'ITAKO' 임원진 인터뷰

"양국 문화 균형 있게 흡수해 건강한 정체성 지니도록 지원"

(토리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입양아들의 부모들이 단체를 결성한 것은 아마 전 세계에서 저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탈리아코리아협회 'ITAKO'가 우리 아이들이 한국이라는 뿌리를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존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함으로써 향후 건강한 정체성 형성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에마누엘레 두란테 이탈리아코리아협회 회장)

연합뉴스

한국입양아가정으로 구성된 토리노의 '이탈리아코리아협회' 입주 건물
(토리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한국에서 입양한 아동을 둔 가정들의 모임인 '이타코'(ITAKO)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토리노 시내의 건물. 2019.5.21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이자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토리노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약 10분 떨어진 한 사회복지센터는 매주 토요일 한국에서 입양된 3∼9세의 아동들과 그들의 부모들로 북적인다.

한국 출신의 입양아를 둔 가정들이 작년에 결성한 단체 이탈리아코리아협회(ITAKO) 주도로 토요일 오후마다 한국에서 입양한 자녀들을 위해 태권도 교실과 음악수업, 그들의 부모를 위한 한국어와 한국 요리 수업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어서다.

이 협회는 작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국에서 자녀를 입양한 토리노 일대의 가정들이 자녀들의 출생지인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함께 축하하고, 응원하기 위해 토리노 시내의 한국식당에서 처음 모인 것을 계기로 싹이 텄다.

토리노와 밀라노의 한인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참여한 당시 모임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서로 부대껴 놀고, 한국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모국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것을 본 입양아들의 부모들은 평창올림픽 직후인 3월에 ITAKO를 공식 발족시켰다.

이어, 지난 10월 말에는 토리노 시의 배려로 토리노 시내의 한 사회복지센터에 협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 명칭에는 아이들을 이탈리아와 한국 두 공동체 모두의 일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녹아 있는 동시에, 입양 자녀들의 뿌리인 한국과 현재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이탈리아 사이에 다리를 놔 양국이 좀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내포돼 있다.

출범 당시에는 한국 입양아를 둔 여덟 가족으로 조촐하게 시작됐으나, 현재는 회원이 서른 가정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활동 범위도 점점 확대되며 토리노 시에서도 최근 들어 이 협회를 사회통합의 모범 사례로 눈여겨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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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한국입양인가정 협회의 활동을 설명하는 두란테 회장과 제르마노 부회장
(토리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토리노를 근거로 한 한국 입양아가정협회 '이타코'의 에마누엘레 두란테 회장(왼쪽)과 알레산드라 제르마노 부회장이 21일 협회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2019.5.21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과 주밀라노 총영사관 등 현지 한국 공관도 이탈리아 내에서 한국을 알리는 데 앞장서며 사실상 양국 사이를 가깝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단체에 주목하고 있다.

주밀라노 총영사관(총영사 유혜란)은 이 단체가 중앙입양원(KAS)에서 협회의 운영 예산을 일부나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최근 부임한 권희석 주이탈리아 한국대사는 토리노에 한국 문화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토리노 한국 주간'을 맞아 토리노를 찾은 길에 21일(현지시간) ITAKO 본부를 방문해 이들을 격려했다.

이 단체의 에마누엘레 두란테(42) 회장과 알레산드라 제르마노(40) 부회장을 토리노에서 만나 협회 결성의 취지와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토리노 시 의원 출신으로 이 지역 토박이인 두란테 회장과 발다오스타 지역에 거주하는 제르마노 부회장은 각각 다섯 살 난 한국 남자아이를 2017년과 2016년에 입양해 서로의 가정에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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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한국입양가정 협회를 방문한 권희석 주이탈리아 대사
(토리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21일 권희석 주이탈리아 대사(오른쪽)가 21일 토리노의 한국입양가정 협회를 방문해 두란테 회장(가운데)을 만나 이들의 활동을 격려했다. 왼쪽은 이 단체를 돕는 현지 교포 이은선 씨. 2019.5.21



다음은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 어떻게 ITAKO라는 단체를 만들게 됐는가.

▲ 처음에 아이를 한국에서 입양했을 때 아이가 좋아하는 한국식 국을 어떻게 끓여야 하는지, 아이가 잘 먹는 김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몰라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작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환경이 비슷한 다른 입양인 가정, 토리노와 밀라노 지역의 한인 공동체와 교류하면서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큰 위안과 함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작년 3월에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을 매개로 한국과 이탈리아의 관계가 좀 더 긴밀해지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이탈리아와 코리아의 합성어인 ITAKO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작년 10월에는 토리노 시의 협조로 시의 사회복지회관 내부에 사무실을 개소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보통 입양인 단체는 성인으로 성장한 입양인들이 결성하기 마련인데, 입양아 부모들이 이런 단체를 만든 것은 아마도 우리가 세계 최초일 것이다. (두란테 회장)

-- ITAKO는 어떤 활동을 하나.

▲ 한국에서 이탈리아 가정으로 입양된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아이들이 태어난 곳인 한국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도록 1주일에 한 번이라도 함께 어울려 놀고, 음식을 나누는 등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3세에서 9세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태권도와 음악을 배우고, 함께 어울려 논다. 아이들이 배우는 동안, 부모들은 한국어 수업과 한국 요리 수업을 받는다. 부모들 역시 아이들이 한국에서부터 잘 먹던 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아이들이 말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등 한국에 대한 갈증이 상당하다. 이런 갈증을 풀기 위해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ITAKO를 결성했다. (제르마노 부회장)

연합뉴스

토리노 한국입양인가정 협회의 활동을 설명하는 두란테 회장과 제르마노 부회장
(토리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토리노를 근거로 활동하는 한국 입양아가정협회 '이타코'의 에마누엘레 두란테 회장과 알레산드라 제르마노 부회장이 '토리노 한국 주간' 포스터 앞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2019.5.21



-- ITAKO는 입양된 아이들과 입양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 비록 어릴지라도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에서 입양됐고, 다른 이탈리아 친구들과는 환경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회원 가정의 아이들은 이미 한국어도 조금은 하고, 한국에 대한 기억이 생기기 시작한 2살 안팎에 이곳으로 온다. ITAKO라는 공동체를 통해 아이들의 출생지인 한국과 현재 삶의 터전인 이탈리아의 문화를 균형 있게 접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아이들은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정체성 위기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통과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뿌리인 한국을 더 잘 알아야 자녀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고 있고, 우리를 통해 양국 사이의 관계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두란테 회장)

-- ITAKO에 현재 참여 중인 인원은.

▲ 처음에는 여덟 가정으로 시작됐고, 약 1년 만에 참여 가정이 서른 가정 안팎으로 늘었다. 이들은 주로 토리노에 거주하고 있지만, 발다오스타 주, 리구리아 주, 라치오 주, 칼라브리아 주 등 사실상 이탈리아 전역에 회원들을 두고 있다. 지금도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아이들을 입양하는 가정이 매달 평균 두 가정씩 생기고 있어, 앞으로 회원 수가 더 늘 것으로 예상한다. 30∼40년 전 한국에서 이곳으로 입양돼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과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일부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특히, 이미 성인이 된 입양인들은 같은 스토리를 갖고 있는 아이들과 가정들이 모인 ITAKO가 결성된 것을 반기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어렸을 때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표현한다. (제르마노 부회장)

-- ITAKO의 운영에 있어 이탈리아내 한인 공동체와도 교류하고 있는가.

▲ 한국어 수업, 한국 요리 수업 등은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없다면 시작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토리노에 사는 한국인 이은선 씨 등이 협회의 일에 처음부터 발 벗고 나서 현재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이은선 씨는 1991년 이탈리아에 온 성악가로, 현재 협회의 이사 역할을 하고 있다.) LG전자 같은 한국 기업의 경우에는 지난달 ITAKO 소속 아이들과 부모들 전체를 밀라노의 사업장으로 하루 동안 초대해 사무실을 견학하고, 제품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와 한국 음식을 제공해줘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다. (두란테 회장)

-- 한국이 세계 경제 규모 10위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현재까지 한국 아동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현실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 상당수 한국인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해외 입양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처럼 우리를 만나게 된 아이들이 아마도 극히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생명을 부여한 생모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생명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또한 한국에서 입양 부모를 찾으려는 노력이 여의치 않자 더 넓은 세계에서 그들의 터전을 찾기 위해 노력한 한국 관련 기관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에서 평생 함께 걸어갈 준비가 돼 있는 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르마노 부회장)

-- 앞으로의 계획은.

▲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뿌리를 존중하고, 태어난 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지닌 채 이탈리아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다. 앞으로는 평일 방과 후에도 아이들과 입양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있는 한국 입양아 가정들을 위해 온라인 과정도 개설하려 한다. 오는 9월 6∼9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로마에서 한국 입양인 가정 전체가 모이는 회의를 열고, 함께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을 방문하는 등 ITAKO의 활동 범위를 넓히려 한다.(두란테 회장)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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