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
투표 다음 날 만난 현지 워클리재단의 헬렌 존스톤은 노동당 주요 공약이었던 세제 개혁과 관련한 시부모의 우려를 설명해줬다. 노동당은 선거 막판에 ‘top end of town’ 우리말로 ‘수퍼부자’쯤 되는 이들을 표적으로 한 증세 계획을 냈다. 납세자 상위 10%에 대해 향후 4년간 320억 호주달러를 더 거둬서 육아·학교 시설 등 복지 예산에 쓴다는 건데, 그 중 수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세액 공제 철폐가 특히 논란이 됐다.
수퍼애뉴에이션이란 1992년 호주가 도입한 퇴직연금제도로 근로자 연봉의 일정분(현행 9.5%, 단계적으로 12%)을 강제 적립하는 제도다. 엄격한 의무가입에다 법적 사유가 없는 한 은퇴 수령 연령 전까지 손을 못 댄다. 그런데 노동당이 이 수퍼애뉴에이션 수령자 중 상위 계층에 대해 세액 공제 철폐를 주장한 게 문제가 됐다. 집권당이 이를 노후자금에 대한 ‘또 다른 증세’라고 몰아붙이면서 민심이 요동쳤다. 선거 프레임이 ‘정권 심판’에서 ‘공정 과세’로 돌아선 계기로 보인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금 연금 내는 수많은 한국인은 호주인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이다. 고령화 속도와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노후 보장용 국민연금은 고갈 위기인데 이를 보완할 퇴직연금 수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 1%대에 불과하다. 호주 수퍼애뉴에이션을 둘러싼 부자증세 혹은 공정과세 논란이 차라리 부러울 지경이다. 글로벌 기관 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맴도는 연금제도 개선을 두고 내년 총선 때 한국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각 당 입장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고 걱정된다.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