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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시론] 어벤져스, 스크린 독과점, 그리고 관객 선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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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이 영화 시장 산성화 초래

다양성 지표를 개선할 대책 절실

중앙일보

남인영 동서대 교수·임권택영화연구소 소장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이 개봉 열하루만인 지난 4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단기록을 경신했다. 21일까지 관람객은 1353만명이었다. 이 ‘마블 영화’의 최고 극장 점유율은 96%나 된다. 하루에 1만2000회 상영된 날도 있어 상영 점유율은 최대 80%를 넘었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다른 영화들은 힘들고 괴롭다. 영화 취향이 다른 관객들도 주저앉고 싶다.

5월 첫 주말 전국에서 상영된 작품 수는 100편이 넘지만, 필자가 찾아간 부산의 한 복합상영관에는 온종일 단 세 편의 영화만 상영되고 있었다. ‘어벤져스’와 ‘뽀로로’가 아닌 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상영관은 멀리 있고 시간도 맞지 않았다. 극장 나들이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관객의 관람을 개봉 초기에 집중시키는 스크린 독과점이 매출액을 결정하는 총관객 수 증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스크린 싹쓸이 없이도 6개월 장기 상영을 통해 1000만에 가까운 관객(994만명)을 동원했다.

그런데도 스크린 독과점은 날로 심해지고 있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영화 시장의 토양 자체를 산성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루 상영 점유율 50% 이상의 영화 수는 지난 5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크린 독과점의 질적 심화를 보여주는 영화의 최고 점유율도 56.1%에서 77.4%로 급증했다. 반면 2018년 영화 다양성 관련 지표는 현저하게 악화했다.

문제의 핵심은 독과점의 심화가 영화 상영시장에서 경쟁을 위축시키고, 극장을 찾는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며, 영화 간 양극화를 고착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영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3대 극장 브랜드를 포함한 26개 단체가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한국영화 동반성장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국회에서 스크린 독과점 해소를 위한 법안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 상정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그러는 사이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불만과 피로가 누적됐다. 지난 2월 한국영화 반 독과점 공동대책위 준비모임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영화 선택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으며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법적 규제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독과점 심화에 대한 경각심과 이를 방임하는 정부·국회를 향한 누적된 불만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안에 반대하는 영화인 서명운동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스크린 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네 번째 법안이 상정돼 있다. 6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 상영할 수 있는 복합상영관에서 동일한 영화를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총 상영 횟수의 50%를 초과해 상영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20~30%의 스크린 상한제를 적용하고 있다. 독일과 미국에서도 50%를 넘지 않아서 이 법안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국회 차원에서 법안의 검증 및 수정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세부적인 규제와 지원 방식을 어떻게 마련하는가가 관건이다. 실효성은 디테일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영화산업 관계자들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심층적인 협의를 거쳐야 한다.

마침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영화진흥위원회도 영화산업 양극화 현상을 영화계 최대 현안으로 판단하고 공정환경 조성을 2019년 주요 사업 목표로 발표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 상황은 절박하다. 더는 미룰 일이 아니다.

남인영 동서대 교수·임권택영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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