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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통상적 업무인가, 비밀누설인가…성창호 등 재판 놓고 팽팽한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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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규에 따른 적법한 보고…무리한 기소" 주장에
檢 "국가의 수사기능과 영장재판 공정성 저해"

조선일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조선DB


‘양승태 사법부’ 시절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된 현직 법관 8명 중 4명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에 대한 재판 절차가 궤도에 오른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는다. 일선 법원에 근무하며 검찰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했고, 대법원까지 내용이 흘러들어가 검찰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조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한 수사기록·영장청구서의 내용을 신 전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신 전 형사수석부장은 이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혐의다.

이 전 법원장도 같은 해 10~11월 법원 소속 집행관이 채무자로부터 압류한 물건을 보관업자에게 알선하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자,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에 알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가 확대돼 법원의 치부가 드러나면, 자신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추진에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 법원행정처와 일선 판사들을 통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재판의 핵심은 일선 판사들이 영장재판 등으로 알게 된 사실을 법원 내규에 따라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는지다. 형법 127조에는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공무원은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들이 보고한 정보는 ‘공무상 비밀’일까. 이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국가기밀도 아닌 영장청구서 등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지 구성요건을 다툴 여지가 있다"며 "이른바 ‘적폐수사’ 이전에는 선례가 없었다"고 했다. 위법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법원 예규에 따라 절차대로 내부 보고를 한 것이라면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에는 ‘중요사건 접수와 종국보고’라는 예규가 있었다. 법원행정처는 예규에 따라 국회의원, 검찰, 사법부 구성원 등 중요 인물과 관련된 형사사건에 대해 각급 법원 담당자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은 것이다. 이 예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진 이후인 지난해 9월 폐지됐다.

통상적 업무보고라는 의견도 있다. 성·조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 측은 지난 20일 공판준비기일에서 "2016년 이전부터 영장전담판사들이 해오던 통상적인 업무보고로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신 전 형사수석부장판사 측도 "사법행정상 필요하며 예규에 따른 정당한 직무행위였다"고 했다. 이 전 서부지법원장 측도 22일 자신의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적법한 예규에 따른 보고였다"는 취지의 변호인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판사는 "수사기밀을 외부에 유출했으면 당연히 유죄로 인정되겠지만, 내부 보고조차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는지는 법관들 사이에서도 ‘모르겠다’며 의견이 많다"고 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영장판사끼리 밥 먹으며 담당 재판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해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넓게 적용한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법관들이 해당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성창호 부장판사는 관행적으로 수사기록을 상급자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고의가 없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고, 검찰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의 입장은 다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피고인들이 상당 기간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면서 "국가의 수사기능과 영장재판 공정성을 저해했다"고 반박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통상적인 업무 보고라는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면서 "딱 한 명에게만 검찰 수사기록을 유출했어도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들의 재판 결과는 결국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영장전담판사에서 형사수석부장판사, 지방법원장, 법원행정처, 대법원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들의 재판이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등 남은 3명의 재판은 오는 27일 시작된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공판준비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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