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주민 함께 여수산단·광양제철 인근에 측정기 설치
23일 오후 전남 여수시 묘도동 묘읍마을에 설치한 대기오염측정기 앞에서 광양만녹색연합 회원들이 측정계기판에 나타난 각종 수치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
23일 오후 전남 여수시 묘도동 묘읍마을 한복판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섬마을인 이곳에서 서쪽 3.3㎞ 거리엔 여수산단, 동쪽 3㎞ 지점엔 포스코 광양제철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신작로에서 차를 세운 광양만녹색연합 회원 3명이 20여m 떨어진 골목 안으로 뛰어갔다. 이들은 대기오염 측정기가 온전히 달려 있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미선씨(44)는 “하루 2번씩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이곳에 와 장비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피게 된다”면서 “측정작업을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떼어가거나 파손할 수 있어 늘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회원 등 기금 모아
광양 등 8곳 중금속 등 체크
“안개 낀 날은 유독 냄새 심해
대기업이 유출 오염물질 탓”
자원봉사자 21명 밤낮 감시
“측정 결과로 피해보상 요구”
이들은 지난 20일 이곳 골목 담벼락에 중금속·미세먼지·먼지 등 3가지 오염물질 성분과 농도를 알아내는 측정기 2대를 설치했다. ㄱ자로 만든 설치대 아래에 길이 15m 모빌 형태의 측정기를 나란히 달아놨다. 그 옆에는 측정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배터리와 각종 숫자가 기록되는 계기판이 담긴 투명플라스틱 상자가 놓여 있다.
함께 온 고화자씨(50)는 “이 모빌이 공중에 빛을 쏘아 날아다니는 오염물질 성분과 농도를 체크하게 된다”면서 “27일까지 진행되는 측정이 마무리되면 이곳에서 대책 없이 쌓여가는 먼지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해질 녘 경남 남해군 서면 정포마을 앞에 설치된 측정기 주변에서도 주민 10여명이 측정기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이들은 서면 일대에 유난히 많은 암환자 발생과 갯바위 백화현상이 광양만권 대기업에서 유출하는 대기오염물질 탓이라고 입을 모아 의혹을 제기했다. 이 마을은 여수산단과 7㎞, 광양제철과 4.9㎞ 떨어진 곳이다. 이장 유주성씨는 “안개라도 낀 날이면 냄새가 심하게 나고, 서풍이나 북서풍이 불 때면 철분·먼지 등이 날아들어 큰 불편을 겪었지만 정확한 출처를 몰라 그냥 애만 태워왔다”면서 “이번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양만권에 이렇게 대기오염 측정이 이뤄지는 곳은 광양시 2곳, 순천시 2곳, 여수시 2곳, 경남지역인 하동군과 남해군 각 1곳이다. 8곳 모두 주민이 기금을 모아 측정기를 마련해 손수 측정에 나섰다. 영호남 주민이 손잡고 대응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최근 여수산단 대기업들이 2015년부터 4년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작하고, 광양제철이 가동을 시작한 1987년부터 30여년 동안 각종 유해물질을 내뿜어오다 검찰에 고발당한 일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광양만녹색연합은 이를 위해 5개 지자체에서 감시자원봉사자 21명을 뽑아 측정기를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
박수완 광양만녹색연합 사무국장은 “자원봉사자들은 측정기 8대 임대료 32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면서 “광양만권에서 대기 중 중금속 성분 측정이 처음으로 이뤄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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